美 경제봉쇄에 숨통 막힌 이란, '암호화폐'로 우회 거래 확산
이란, 암호화폐 규제 완화…"수출대금으로 코인 수령"
- 이정환 기자
(서울=뉴스1) 이정환 기자 = 이란이 미국의 고강도 경제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국경 간 거래의 결제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24일 미국은 디지털 자산, 군사기술, 금, 항공, 해운 등 5개 핵심 부문에서 이란의 교역국을 제재하는 '경제적 고립 작전'을 발표했다. 제3국을 통한 국제 금융 거래까지 차단해 경제를 고사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그간 서방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모색해 온 이란은 국경 간 거래를 위한 대안적 결제 수단이 더욱 시급해졌다.
이란 당국은 최근 국경 간 거래에서 테더·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통제를 조용히 완화했다. 전쟁 전 이란 무역업자들은 상당량의 수출 대금을 이란에 들여와 정부 공식 환율에 따라 매각해야 했다. 현재는 공식 거래 시스템 대신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 수출 대금을 직접 수입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중국과 거래하는 이란의 한 철강 수출업자는 이란 당국이 자신의 수출 수익을 원자재 직접 수입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에는 수출로 번 외화를 국내로 가져와 전용 플랫폼에서 말도 안 되게 낮은 가격에 팔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일이었다"며 "이제 자신의 사업에 필요한 물품을 직접 수입하는 데 그 돈을 쓸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란 정권과 가까운 한 기업 간부는 "이란 중앙은행은 그 돈이 어떻게 송금됐는지 묻지 않는다"며 전쟁 이후 이러한 완화 조치가 보편화됐다고 설명했다. 이 간부는 "수출 대금으로 암호화폐를 받는 방식이 이제 완전히 정착됐다"고 FT에 전했다.
스테이블코인 테더는 미국 달러 대비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설계돼 특히 유용하다. 테더 운영사는 지난 4월 미 당국이 이란 중앙은행과 연계된 것으로 파악한 암호화폐 지갑에서 3억 4400만 달러(약 4600억 원) 상당의 스테이블코인을 동결한 바 있다.
블록체인 데이터업체 'TRM 랩스'에 지난해 이란을 통해 오갔던 암호화폐 규모는 100억 달러(약 13조 4000억 원)에 달했다.
블록체인 데이터업체 '체이널리시스'의 에이탄 다논 전략고문은 이란인들에게 암호화폐는 "단순한 신기함이나 취미가 아니라 수년 동안 글로벌 결제 시스템에서 배제돼 온 국가의 현실"이라며 "지정학적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암호화폐 사용이 증가하는 것을 지켜봐 왔다"고 전했다.
이란 디지털전환협회 회원 알리레자 보조르그메리는 중앙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감독을 완화했으며 규정의 엄격한 적용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량이 늘었지만, 이란의 막대한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재무부는 "이란 정권이 제재 회피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암호화폐에 점차 의존하고 있다"면서도 이란과 암호화폐와 거래하는 주체는 누구든 제재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이란의 정치경제학자 사이드 레이라즈는 "지하 경제화가 심해질수록 암호화폐를 사용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며 "봉쇄에는 구멍이 있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jw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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