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만 믿을 수 없다…사우디·튀르키예·파키스탄 '공동방위협정' 체결(종합)

"방어적 성격…한 국가에 대한 공격은 모든 국가에 대한 공격"
중동 안보질서 재편 시사…美안보 우산 외 새 안보 체제 출범 가능성

(왼쪽부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7일(현지시간) 사우디 메카에서 '메카 공동 방위 협정'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은 튀르키예 대통령실 제공. 2026.08.07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이창규 김지완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튀르키예가 6일(현지시간) 공동방위협정을 체결했다. 가자전쟁에 이어 이란전쟁까지 중동 정세가 격화되고 미국의 안보 우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역내 국가들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AFP 통신 등에 따르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협정에 서명했다.

3국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집단 안보를 강화하고 역내는 물론 그 너머의 평화와 안보, 안정을 증진하겠다는 공동의 의지"라고 밝혔다.

파키스탄 외무부도 이 협정이 "어떠한 침략 행위에도 대한 집단적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며, 3개국 중 어느 한 국가에 대한 무력 공격은 모든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튀르키예 관계자는 이 협정이 순전히 방어적 성격이며, 세 나라가 다른 국가들과 맺은 기존 협정도 무효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협정을 위해 약 1년간 협상이 진행됐으나 이란이 지난 2월 말 미국과 전쟁이 시작된 후 주변 걸프 국가들을 공습하면서 중동에서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면서 협정 체결이 가속화된 것으로 보인다.

버킹엄대학의 사우디 외교정책 전문가인 우메르 카림은 이번 협정에 대해 "현재 새롭게 부상하는 현실 속에서 이란의 걸프 지역 내 입지가 상당히 강화됐지만 이란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들 국가의 연대는 분명히 이란을 겨냥하고 있으며 더 넓은 걸프 지역을 지배하려는 이란의 새로운 전략적 접근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튀르키예와 파키스탄이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점에서 두 나라가 이란에 색다른 형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제브데트 이을마즈 튀르키예 부통령은 이번 협정이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번 협정을 두고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이 6개월째가 되도록 뚜렷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는 동안 이란의 영향력은 오히려 커지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중동 국가들은 종전 후 미국이 전쟁에서 빠져나갈 경우 이란의 분노가 역내 다른 국가들로 향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6.8.7. ⓒ 로이터=뉴스1

3개국은 이번 협정과 관련한 의무에 대해서도 한 나라가 공격받았을 때 나머지 국가들이 어느 정도까지 특정 군사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는데 이는 단순 방어를 위한 협정 이상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킹스칼리지런던의 안드레아스 크리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튀르키예, 파키스탄은 미국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지켜줄 수 없거나 그럴 의지가 없을 때 스스로 이를 보호할 역량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라며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전쟁 이후 "미국이라는 하나의 안보 우산보다 여러 겹의 안보망"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협정이 역내 안보의 주도자로 자리매김하고 방위 체계를 다변화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야심을 지지하는 한편 튀르키예와 파키스탄에는 정치적 영향력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잠재적 투자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협정이 중동 내 새로운 안보 체제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튀르키예 관계자도 다른 국가들도 협정에 가입할 수 있다며 협정을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튀르키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두 번째로 큰 군대를 보유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의 양대 성지가 자리한 세계 주요 산유국이며, 파키스탄은 이슬람권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다. 이에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지원에 불안을 느낀 중동 국가들에는 충분히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싱크탱크 걸프연구센터의 압둘아지즈 사게르 회장은 "확실성이 고조된 시점에 이슬람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 나라가 한자리에 모였다"며 "이는 역내 국가와 중견국들이 안보 문제에서 더욱 긴밀히 협력하려는 의지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이 3자 체제는 세 나라의 집단적인 외교·국방 영향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역내 국가들이 더욱 주도하는 안보 체제가 출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yellowapoll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