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은 멈췄지만…이스라엘의 상흔과 트라우마[최종일의 월드 뷰]
- 최종일 선임기자
(텔아비브·예루살렘·니르 오즈 키부츠=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최근 며칠간 방문한 이스라엘에선 로켓이나 미사일 공격이 임박했을 때 활성화되는 '적색경보' 사이렌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 "많을 땐 하루 50번이나 사이렌이 울렸고, 매번 방공호로 대피했다"고 전해 들었지만 더 이상 이스라엘에 이런 긴박함은 없었다.
고급 카페와 레스토랑이 늘어선 텔아비브의 해변은 활기가 넘쳐 보였고, 예루살렘에선 올드시티로 향하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북부 최대 도시 하이파는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극도의 혼란과 충격 그리고 국가적 공분은 어느 정도 해소되고 누그러졌다는 징후로 해석했다.
하지만 깊은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에 2년여는 긴 시간이 아니었다. 하마스 무장대 수백 명이 국경을 넘어 민간 지역을 급습해 학살과 납치가 동시에 벌어진 일은 '전쟁과 함께 살아온'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만행으로 비명에 간 이는 약 1200명으로,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텔아비브의 한 30대 시민은 "서울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돌아다니며 어린아이를 비롯해 시민들을 살해했다고 생각해 보라. 한동안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상흔은 남부 키부츠(집단농장 마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니르 이츠하크(Nir Yitzhak)에서 가족 4명과 하마스에 끌려가 129일간 억류됐다가 이스라엘군에 의해 구조된 루이스 하르 씨(72)는 지난 9일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트라우마는 멈추라고 해서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앞으로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 기억 속에서 던져지고,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지난 11일 직접 찾은 남부 키부츠 니르 오즈(Nir Oz)는 대부분의 주민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상태로, 당시의 공포가 그대로 박제돼 있었다. 가자지구와 직선거리로 불과 2km 떨어진 이곳엔 220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하마스가 공격하지 않은 집은 6곳뿐이었다. 하마스는 가스 배관을 잘라, 그 가스로 집에 불을 질렀다. 뼈대만 남고 내부는 잿더미로 변했거나 난장판이 된 집들은 당시의 참상을 날 것으로 보여줬다.
하마스의 공격 이후 몇 주 동안 가자지구 주변의 도로와 마을에서 수거된 1560대의 차량이 모아져 있는 차량 보관소는 당시 벌어진 만행이 얼마나 잔인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하마스 수백 명은 도로 위에 보이는 차량 대부분에 총을 쐈을 뿐 아니라 로켓추진식수류탄(RPG)을 사용해 폭파했다고 했다. 차량에 남아 있는 총탄의 흔적은 당시 폭력의 강도를 말없이 드러냈다.
생존자 그리고 이들 가족의 고통을 공유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작업이 이스라엘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단 점은 고무적이었다. 공동체의 끈끈한 연대를 확인하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단 결의로 느껴졌다.
하르 씨와 인터뷰가 이뤄진 텔아비브 미술관 앞 인질 광장에 설치된 대형 디지털시계의 숫자는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시계는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질들이 잡혀간 순간부터 현재까지 경과된 시간을 보여준다. 광장 중앙 천막과 나무엔 이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글이 적힌 종이가 빼곡히 매달려 있었다.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들의 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BRING THEM HOME NOW(지금 당장 그들을 집으로 데려오라)'는 문구도 마찬가지였다. 노란색 기를 붙이거나 손잡이에 노란색 끈을 단 채 달리는 차량도 눈에 띄었다. 주검이 되어서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인질들 그리고 전장에서 유명을 달리한 군인들의, 다시 볼 수 없는 환한 얼굴이 있는 추모 스티커는 거리 곳곳에 붙어있었다.
남부 네게브 사막의 레임 인근의 노바 페스티벌 현장에선 지난해 초에 식수 사업이 시작됐다. 한꺼번에 378명이 숨진 고통스러운 과거를 단순한 슬픔으로 남기지 않고, 미래를 위한 책임과 희망으로 승화시키려는 사회적 노력으로 비쳤다. 심어진 나무들은 잔혹한 폭력의 현장이었던 곳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치유와 회복을 상징한다고 한다.
키부츠 니르 오즈에서 현장을 안내해 준 주민 리타 립시츠 씨(61)는 "이스라엘의 갭 이어(고교–군대 사이 1년) 청년들 50명이 이곳으로 와서 재건을 돕고, 여기서 함께 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들이 여기서 아이들을 낳고 살면, 이곳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 믿습니다" 립시츠 씨의 시어머니는 17일 만에 인질에서 풀려났고, 시아버지는 500일 넘게 가자지구에 잡혀 있다가 관에 실려 돌아왔다.
그럼에도 립시츠 씨는 "여전히 평화를 믿는다. 하지만 그 평화는 하마스와 함께하는 게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하는 평화"라고 말했다. 그는 오는 12월에 니르 오즈로 다시 들어올 것이라며 "무섭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도 두렵다. 하지만 우리는 하마스보다 강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여기로 돌아와 살 것이다"고 힘줘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거취 문제 그리고 장기적으로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설정은 이스라엘 앞에 놓인 과제이다. 텔아비브의 한 50대 시민은 "네타냐후는 10월 7일 공격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면서, 이 문제로 사회가 완전히 갈라져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스라엘에선 안보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리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기 위한 진상 요구 시위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개의 독립된 국가가 1967년 6일 전쟁 이전의 경계선을 기반으로 공존하는 방식이다. 국제사회에서 널리 지지받는 해결책이지만 양측의 강경파는 반대한다. 하나의 민주적 세속 국가를 세우자는 '한 국가 해법'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성이 떨어지고 지지기반도 매우 취약하다. 결국, 공식적인 해결책 없이 현재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이는 갈등과 긴장이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하마스에 의해 끌려간 약 250명의 인질 대부분은 협상과 군사작전을 통해 풀려났거나 시신이 수습됐다. 3명의 시신 반환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이스라엘 군인은 900명 이상 숨졌다. 팔레스타인 보건 관리들은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6만9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고 집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 숫자를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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