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출소하는 레바논 테러리스트[최종일의 월드 뷰]

프랑스 남서부 란네메잔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레바논 출신의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74). 사진은 지난 17일 촬영된 것이다. 2025.07.17 ⓒ AFP=뉴스1 ⓒ News1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이스라엘과 미국 외교관 암살에 공모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교도소에서 약 40년 간 수감돼온 유럽 최장기 정치범이 이번 주 출소한다. 최근 이스라엘에 대해 즉각적인 가자전쟁 중단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1980년대 프랑스에서 '공공의 적 1호'로 불렸던 친(親)팔레스타인 마르크스주의자는 자유의 몸이 된다.

파리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레바논 출신의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74)에 대해 오는 25일 석방을 결정했다. 프랑스를 즉시 떠나 돌아오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매서운 눈빛에 갈색 수염이 수북한 30대 중반의 남성은 인생 황혼기에 고향을 찾게 됐다. 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그리고 흐린 눈빛은 흘러간 아득한 시간을 말해준다.

지금도, 압달라는 자신은 "범죄자"가 아니고 피억압민의 권리를 위해 싸운 "투사"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지 않는다. 그는 1987년 재판에서 "내가 따라간 길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행해진 인권 유린에 의해 내게 부과된 것"이라고 자신의 의무를 실천했다는 식으로 답했다. 암살은 억압과 불의에 맞선 "저항 행위"란 게 그의 항변이었다.

1967년 중동전쟁이 낳은 '알 나크사' 아랍 세대

압달라는 1951년 레바논 북부 알쿠바이야트에서 마론파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스라엘 건국 3년 뒤였다. 그의 청소년 시절은 반제국주의 성격의 아랍 민족주의가 절정을 맞던 때였다.

하지만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등을 불법 점령했고, 이에 약 35만의 팔레스타인인이 삶의 터전을 등진 일은 아랍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압달라도 또래 세대와 마찬가지로 '알 나크사'(좌절)에서 정치적 의식을 키웠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1970년 '검은 9월' 사건으로 활동 거점을 요르단에서 레바논으로 옮기면서 레바논은 중동의 전화에 휩싸였다. 수줍음 많은 중고 교사였던 압델라는 레바논 내전(1975~1990년) 초기인 1978년 이스라엘이 PLO의 무장투쟁을 구실로 레바논을 공격했을 때 전투에 참가했다가 부상했다.

이스라엘과 미국 외교관 암살에 공모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교도소에서 약 40년 간 수감돼온 유럽 최장기 정치범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74)가 오는 25일 출소한다. 사진은 1986년 7월 재판받을 때 모습이다. ⓒ AFP=뉴스1 ⓒ News1 최종일 선임기자

내전 속에서 압달라는 엘리트에서 급진 무장대원으로 탈바꿈했다. 그는 PLO 산하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 가입을 거쳐, 1979년엔 친팔레스타인 마르크스주의 무장단체 레바논무장혁명분파(LARF)를 직접 설립했다. LARF는 1981년과 1982년 프랑스에서 4차례를 포함해 총 5차례의 테러를 벌였다.

압달라는 1984년 위조 신분증이 발각돼 체포됐고, 1987년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82년 파리에서 미 군무관 찰스 로버트 레이와 이스라엘 대사관 2등 서기관 야코브 바르 시만토프를 살해하는데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레이는 미중앙정보국(CIA), 시만토프는 모사드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LARF는 배후가 자신들이며, 암살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미국의 개입에 대한 보복이라고 입장을 냈다. "테러리스트는 누구인가?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했단 이유로 서안지구에서 온 청년을 살해하는 사람들, 레바논 남부의 민간인을 폭격하는 사람들, 맹목적으로 죽이고선 '휴전' 뒤에 감히 숨으려는 사람들…."

99년부터 가석방 자격 갖췄지만 美 반대로 계속 철창 신세

프랑스 항소법원 측은 그의 수감 기간이 "차별적"이었다고 인정했고, 그가 더 이상 대중에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프랑스에선 무기징역형을 받더라도 대부분 수감 기간 30년 전에 풀려난다. 압달라는 1999년에 가석방 조건을 갖췄지만, 그간 10여 차례 석방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민간 당사자(Civil Party) 자격으로 그의 재판에 참여했던 미국 정부가 압달라의 석방에 완강히 반대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2013년 당시 힐리러 클린턴 국무장관은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에게 법원의 승인을 받더라도 압달라의 석방을 막을 방법을 찾아보라고 촉구하는 메시지를 직접 보냈다. 이후, 마뉘엘 발스 내무장관은 압달라의 추방 명령에 서명을 거부했다.

이번 석방 결정은 레바논 정부와 국제 인권단체가 오랜 기간 기울인 노력의 결과이다. 이들은 장기 수감은 법적 정의보단 정치적 이해에 따른 것이란 주장을 펼쳤다.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앤절라 데이비스와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노엄 촘스키 등은 2021년 10월 공개서한을 통해 "압달라 석방을 향한 외침은 단순한 정의의 요구"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그의 석방에 반발했다. 파리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은 "자유세계의 적인 테러리스트들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고 성명을 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1년을 맞이한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모습이다. 2024.10.07 ⓒ AFP=뉴스1 ⓒ News1 최종일 기자

가자전쟁 대응을 놓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갈등을 겪고 있는 점은 그의 석방에 호재가 됐다. 레바논에 거주 중인 그의 동생 로베르 압둘라는 AFP통신에 "무척 기쁘다. 프랑스 사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다"면서 "프랑스 당국은 이번 한 번만 이스라엘과 미국의 압박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지난 40년 간 세상은 급격하게 바뀌었다. 압달라가 신봉했던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급속히 퇴조했고 그는 백발의 노인이 됐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대의'에 대한 압달라의 지지는 굳건하다. 긴 세월이 지나도 여전한 팔레스타인의 끔찍한 참상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기습공격으로 촉발된 가자지구 전쟁으로 6만명 가까운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해 소유하고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다음 지중해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유엔은 가자지구 전체 인구가 현재 기아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가혹한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또 다른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출현할 수밖에 없다. 압달라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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