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쿠바 '해외파견 의료단' 압박…중남미국 계약 종료 속출

50개국 대상 의료인력 지원…"파견 수익 쿠바 연간 수출액의 절반 수준"
美 "노동착취·인신매매" 비판…"현지 주민들의 생명선" 반박도

<기사와 관계없는 자료사진> 2026.03.24. ⓒ AFP=뉴스1

(서울=뉴스1) 이정환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쿠바 정권의 핵심 외화 수입원인 '해외 파견 의료단'을 차단하기 위해 중남미 국가들을 상대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구 대비 의사 비율이 세계 최대 수준인 쿠바는 해외 여러 국가에 의사와 간호사를 파견하는 해외 파견 의료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기준 전 세계에 의료진 2만 4000명을 파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쿠바에 전방위적인 정치·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가 의료진을 파견하는 국가들에게 계약을 종료하거나 축소하도록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카리브해 지역을 순방 중이던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쿠바의 파견 의료진을 "인신매매 부대"라고 부르며 역내 국가 지도자들에게 계약 종료를 요구했다. 미국 국무부는 의료단 계약에 관여한 외국 정부 관계자들의 미국 입국 비자를 제한하는 조치에 착수했다.

자메이카는 이번 겨울 약 50년간 이어진 쿠바와의 의료 협정을 종료했다. 과테말라에서도 쿠바 의료진 412명이 지난 4월부터 떠나기 시작해 올해까지 모든 인원이 철수할 예정이다. 바하마·온두라스 등 이웃 국가들도 쿠바와 의료 협정을 중단했다.

일부는 미국 정부의 압박에 쿠바 의료진이 철수하면서 지역 보건 서비스가 위태로워진다고 지적한다.

온두라스 매체들이 공유한 영상에는 주민들이 그동안 운영되던 안과 병원을 떠나는 쿠바 의료진을 눈물로 배웅하는 모습이 담겼다. 주민들은 환자들에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쿠바 의사들을 생명선이라 부른다고 WSJ는 전했다.

온두라스 농부 호세 에나모라도는 자신의 아버지가 지난해 쿠바 의사들로부터 무료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며, 그렇지 않았다면 2000달러(약 300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국가는 미국의 요구에도 쿠바의 파견 의사 관계 단절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쿠바의 의료진 없이는 자국의 의료 서비스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의 랄프 곤살베스 총리는 미국 정부의 압박에 "나는 60명의 가난하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죽는 것보다 내 비자를 잃는 편을 택하겠다"고 응수했다고 WSJ는 전했다.

쿠바는 중남미 국가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도 의료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 로베르토 오키우토 칼라브리아주 지사가 지역 병원의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고용한 쿠바 의료진과 함께 이탈리아 코센차에 위치한 칼라브리아 대학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10.03. ⓒ 로이터=뉴스1

쿠바는 1963년 알제리를 시작으로 지난 수십년간 50개국 이상에 의료진을 파견해 왔다. 쿠바 정부는 의료단을 쿠바 사회주의 모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핵심 도구로 여겼다.

다른 한편으로 쿠바는 수혜국 정부들이 비용을 지불해주기 때문에 의료단 사업을 통해 연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수입을 올려 왔다. 이 프로그램은 2024년 기준 쿠바 전체 수출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53억 달러(약 7조 6000억 원)의 수익을 올리게 한 '경제 생명줄'이다.

해외 쿠바인 단체에서는 쿠바가 의사들을 상대로 수혜국 정부가 지급한 월급을 상당분 거둬들이는 등 노동착취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규탄한다. 스페인 기반 인권 단체 '프리저너스 디펜더스'는 쿠바 정부가 의사 1명당 매달 수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으며, 멕시코에서는 약 3500달러(약 520만 원), 이탈리아에서는 약 4000달러(약 600만 원)를 거둬간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루비오 장관은 지난 2월 미국이 중남미 국가들에 쿠바 의사들을 대체할 대안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해군은 단기 치료·수술·교육을 위해 병원선 '컴포트'(USNS Comfort)를 카리브해 지역에 파견했지만, 현지 관계자들은 이러한 제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쿠바 의료진을 쉽게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이 쿠바 해외 파견 의료단의 '착취적 관행'과 관련한 정보를 외국 정부들에 공유하고 있으며, 쿠바를 거치지 않고 쿠바 의료진을 직접 고용해 급여를 지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jw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