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화두 된 코스피·필반 지수…"AI 시대 '약세장' 정의 흔들려"

고점서 20% 빠져 약세장 진입했지만 저점서도 연초대비 25%·46%↑
"폭등 뒤 급락에 20% 잣대 한계…하락기간·변동성·경기 함께 봐야"

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87.61p(1.33%) 상승한 6650.33, 코스닥은 10.33p(1.28%) 오른 814.31에 거래를 시작했다. 2026.9.3 ⓒ 뉴스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인공지능(AI) 열풍으로 폭등한 뒤 극심한 변동성을 보인 한국 코스피와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가 월가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두 지수 모두 지난 7월 고점에서 20% 넘게 떨어져 전통적인 기준상 '약세장'(bear market)에 진입했다.

하지만 코스피와 SOX 둘 다 당시 저점에서도 연초 대비 상당한 상승률을 유지하면서 '20% 하락=약세장'이라는 오랜 공식이 AI 시대에도 유효한지를 놓고 월가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I 열풍으로 주가 상승폭과 변동성이 동시에 커지면서 코스피와 SOX가 월가에서 오랫동안 통용돼온 '20% 하락=약세장'이라는 공식에 의문을 던지는 대표적인 사례로 떠오른 셈이다.

SOX와 코스피는 지난 7월 고점 대비 20% 이상 떨어져 월가에서 통용되는 전통적인 기준상 약세장에 진입했다. 하지만 약세장 진입 당시 저점에서도 SOX는 연초 대비 46%, 코스피는 25% 상승한 상태였다. 지난 1년 동안 두 지수가 세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할 정도로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주가가 고점에서 20% 떨어졌다는 이유로 '약세장'이라고 부르지만 코스피와 SOX 지수는 연초 이후 여전히 상당한 수익을 내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아트 호건 B.라일리웰스 수석 시장전략가는 변동성이 큰 자산에 전통적인 약세장 명칭을 적용하는 것은 "다소 안일한 명명법"이라고 지적했다.

스티브 소스닉 인터랙티브브로커스 수석 전략가도 "이런 명칭은 광범위한 시장에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미친 듯한 포물선형 상승세를 보인 SOX와 코스피 같은 지수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고점 대비 20% 하락=약세장' 공식 흔들

약세장은 일반적으로 주요 주가지수가 최근 고점에서 20% 이상 하락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기준은 단순하고 직관적이어서 일상적인 조정과 장기간 이어질 수 있는 시장의 구조적 하락을 구별하는 지표로 널리 활용돼왔다.

하트퍼드펀드 자료에 따르면 1928년 이후 S&P500 약세장은 평균 289일, 약 9.6개월 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AI 투자 열풍이 특정 기술주와 반도체주를 단기간에 폭등시키면서 단순히 고점 대비 하락률만으로 시장의 방향을 판단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SOX와 코스피는 전통적인 약세장 기준을 충족한 이후 다시 반등했다. 약세장이라는 신호만 보고 저점에서 주식을 매도했다면 이후 상승분을 놓쳤을 수 있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특히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전망은 여전히 강하다. LSEG 집계에 따르면 올해 S&P500 반도체·반도체장비 업종의 이익은 최소 114.7%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이익이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주가가 단기간에 20%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전통적인 약세장과 동일하게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락폭뿐 아니라 기간·변동성·경기까지 봐야"

그렇다면 20% 대신 어떤 기준을 사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가 없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로이터가 인터뷰한 12명 이상의 시장 전문가 가운데 일부는 하락폭뿐 아니라 하락이 지속되는 기간과 기초적인 시장 변동성, 경제 전반의 방향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러셀 트레이드스테이션 글로벌 시장전략 책임자는 "약세장으로 확인되려면 여러 주 또는 여러 달 동안 하락세가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금리와 경기 고점 통과처럼 시장의 보다 깊은 구조적 요인도 부정적이어야 진짜 약세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일정 기간의 평균적인 가격 흐름을 보여주는 이동평균이나 주가가 하락할 때 반등 또는 하락세 둔화 가능성이 있는 수준을 파악하는 데 사용하는 피보나치 되돌림 등을 투자 판단에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소스닉 전략가는 지수 하락률이 최소한 해당 지수의 과거 1년간 연율화 변동성을 넘어야 약세장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SOX는 고점에서 20%가 아니라 44% 이상 하락해야 약세장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같은 새로운 기준은 SOX와 코스피, 미국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100처럼 변동성이 큰 지수의 움직임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

하지만 '20% 하락'처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으로 시장을 정의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다.

조 살루치 테미스트레이딩 주식거래 공동대표는 오랜 기간 시장에서 일해 온 투자자들에게 약세장 판단은 결국 정해진 숫자보다는 "느낌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