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선트가 눌러버린 美장기금리…월가 "연준이 대신 더 올려야 할 수도"
블룸버그 "수십년래 가장 개입주의적 재무장관"…WSJ "가장 과감한 시장 개입"
시장 긴축 선호한 워시와 충돌 가능성…"재무부·연준 서로 반대 방향"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장기 국채금리를 끌어내리기 위해 시장 개입 수위를 높이면서 월가에서는 재무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바이백(조기 환매)을 최소 2배 확대하자 블룸버그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선트가 시장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재무장관으로 변모했다고 평가했다.
야후파이낸스는 한발 더 나아가 재무부가 장기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면 시장금리 상승을 긴축의 일부로 활용하려던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경우에 따라 기준금리를 더 공격적으로 올려야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는 베선트가 올해 일련의 예상 밖 조치를 통해 "수십 년 만에 가장 개입주의적인 재무장관"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장기채 바이백 확대뿐 아니라 이달 초 장기물 국채 발행을 줄일 가능성을 열어놓은 데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미국 당국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엔화를 매입했다. 앞서 은행들에 엔화 시세를 문의하는 이른바 '레이트 체크(rate check·환율 점검)'도 실시했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움직임이 금융위기나 시장 기능의 마비 같은 위기 상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다. 최근 국채 매도세는 질서 있게 진행됐는데도 재무부가 개입했다는 것이다.
마크 소벨 전 미 재무부 관리는 "그는 분명히 행동주의적"이라며 "헤지펀드 경력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베선트와 트럼프 행정부가 장기금리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도 명확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특히 베선트의 행보가 재무부가 오랫동안 고수해 온 국채 발행의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regular and predictable)' 원칙과 긴장 관계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베선트 자신도 지난해 이러한 원칙을 지지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미국의 "최고 채권 세일즈맨"이라고 부르며 국채금리를 자신의 성과를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로 제시했다.
그레고리 파라넬로 아메리벳증권 미국 금리 트레이딩·전략 책임자는 이번 조치가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원칙에 어긋난다면서도 재무부가 시장에 보내는 메시지는 "금리 상승을 멈추라"는 것으로 명확하다고 평가했다.
브래드 세처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안정적인 규칙을 정한 뒤 시장이 알아서 움직이도록 내버려두는 행정부는 아니다"고 말했다.
WSJ는 이번 바이백 확대를 베선트가 시장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내놓은 조치 가운데 "가장 과감한" 움직임으로 평가했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베선트가 자신의 시장 경험을 바탕으로 환율뿐 아니라 국채 발행과 바이백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기존 재무장관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WSJ는 장기금리 상승을 만들어낸 근본적인 요인을 고려하면 베선트의 개입이 결국 "주변부를 손보는 것(fiddling around the edges)"에 불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임스 매킨토시 WSJ 칼럼니스트는 최근 장기금리 상승의 배경에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 국방비 확대, 리쇼어링 등으로 세계적인 자본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AI 기업들이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를 위해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각국 정부도 국방과 공급망 재편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면서 한정된 자금을 놓고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 수요가 늘어난 만큼 자본 공급자가 요구하는 가격, 즉 장기금리도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바이백 확대나 장기물 발행 축소를 통해 국채 수급을 조정하더라도 이러한 구조적 자본 수요까지 없앨 수는 없다고 WSJ는 평가했다.
오히려 장기채 발행을 줄이고 단기 국채 비중을 늘리는 전략은 정부 재정을 단기금리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금리가 추가 상승하면 만기가 짧은 부채를 계속 차환하면서 이자비용이 더 빠르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WSJ는 높은 장기금리를 과도한 차입에 대한 일종의 '대가(reckoning)'로 볼 수 있다며 베선트가 지금까지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증세를 통해 근본적인 재정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야후파이낸스는 이번 조치의 초점을 베선트와 워시 연준 의장 사이의 정책적 긴장에 맞췄다. 워시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크게 오른 채권금리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시장금리 상승 자체가 가계와 기업의 차입비용을 높여 금융여건을 긴축하기 때문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직접 올리지 않더라도 시장이 어느 정도 긴축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하지만 재무부가 바이백 확대를 통해 바로 그 장기금리를 끌어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야후파이낸스는 지적했다.
윌밍턴트러스트의 윌 스티스 선임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시장은 장기 채권시장이 연준을 대신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연방기금금리를 올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며 "그런데 이제 재무장관이 그것을 되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준과 재무부가 사실상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인플레이션이 현 수준에 머물거나 다시 상승할 경우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재무부가 장기금리를 낮춰 금융여건을 완화하면 연준은 그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 많이 올려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스티스는 연준이 재무부보다 훨씬 강력한 정책 수단을 갖고 있다며 결국 연방기금금리를 더 크게 조정해야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RSM의 조 브루수엘라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재무부의 조치가 물가상승률을 2% 목표로 되돌리려는 워시의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시장이 스스로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워시의 철학과도 충돌한다.
워시는 정부나 중앙은행의 구체적인 지침보다 시장이 경제 상황을 반영해 금리를 형성하는 방식을 선호해왔다. 최근 투자자들이 장기 미국 국채 보유에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한 것도 그런 시장 가격 결정 과정이었다는 설명이다.
시장에서는 재무부가 장기금리 상승을 지속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평가가 나온다.
크리슈나 구하 에버코어ISI 중앙은행 전략 책임자는 바이백 확대의 "즉각적인 효과는 눈에 띄지만 더 긴 기간에 걸쳐 중대한 영향을 줄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재무부의 개입이 최근 금리 상승으로 국채 매수를 고민하던 투자자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단기적으로 숏커버링을 유도할 수는 있다. 앞으로 투자자들이 재무부의 추가 개입을 우려해 국채에 대규모 매도 포지션을 구축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효과도 예상된다.
하지만 재정적자와 목표를 웃도는 인플레이션, 달러 약세, AI 투자를 위한 기술기업들의 대규모 채권 발행 등 장기금리를 끌어올린 요인은 그대로다.
브루수엘라스는 장기금리를 지속적으로 낮추려면 결국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며 이번 조치는 "스스로 만든 벌어진 금융 상처에 바르는 일시적인 연고"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베선트가 앞으로 장기채 발행 규모까지 줄이거나 바이백 규모를 현재 최소 40억달러에서 다시 80억달러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는지도 시장의 관심사다.
당장 시선은 다음 주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리는 연준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으로 향한다. 워시는 이곳에서 기조연설에 나설 예정이다.
스티스는 재무부의 이번 조치로 "워시가 아마 연설문을 다시 써야 할 것"이라며 당초 포워드가이던스 없이 인플레이션 둔화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면 이제 재무부의 개입에 대응해 더 강한 메시지를 내거나 포워드가이던스를 최소화하려던 전략을 일부 수정해야 할지가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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