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AI 성공해도 美기술주 조정 가능…유럽 금융안정 위협 우려"
유로존 가계 美기술주 노출 4400억유로…닷컴·철도·전기 붐과 유사
"거품이어야 폭락하는 것 아냐"…기술 확산 자체가 위험 프리미엄 높일 수도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인공지능(AI)이 경제를 혁신하더라도 미국 기술주의 주가 조정은 나타날 수 있고 그 충격이 유럽 금융시장까지 번질 수 있다는 유럽중앙은행(ECB) 경제학자들의 경고가 나왔다.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CB 경제학자들은 이날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미국 기술주의 조정이 반드시 비이성적인 과열이나 AI 거품 붕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며 "현재의 밸류에이션이 합리적이라고 해도 조정은 예상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AI가 실제로 성공하더라도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ECB 경제학자들은 현재의 AI 투자 붐을 19세기 철도 건설 붐과 1920년대 전기·라디오 확산, 2000년 전후 닷컴 붐과 비교했다. 이들 사례에서는 실제로 세상을 바꾼 기술이 등장했고 이를 선도한 기업에 투자가 몰리면서 주가가 급등했지만 이후에는 큰 폭의 조정이 뒤따랐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초기에는 기술이 성공할지, 어느 기업이 승자가 될지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와 같은 선도기업에 투자하면 성공할 경우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반면 실패하면 투자금을 대부분 잃을 수도 있다.
기술혁신 초기에는 어떤 기업이 승자가 될지 불확실하지만, 성공할 경우 막대한 이익을 낼 가능성이 있는 만큼 투자자들이 현재 실적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서 주가와 주가수익비율(PER)이 크게 오른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AI가 성공해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특정 기업에 집중됐던 AI 관련 위험이 경제 전체의 위험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개별 기업의 위험은 여러 종목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분산할 수 있지만 경제 전체가 특정 기술에 의존하게 되면 그 위험은 분산하기 어렵다. 이에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게 되고 위험 프리미엄이 상승하면서 주식의 적정 밸류에이션은 낮아질 수 있다.
즉 AI가 실패해서 기술주가 떨어지는 것뿐 아니라 AI가 성공하고 경제 전반에 자리 잡는 과정에서도 주가 조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CB 경제학자들은 물론 투자자들의 과도한 자신감과 낙관론으로 주가가 펀더멘털 이상으로 상승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 경우 낙관론이 꺾이면 합리적인 밸류에이션을 전제로 한 경우보다 주가 하락폭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미국 기술주 조정의 충격이 미국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ECB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유로존 가계가 보유한 미국 기술주 익스포저는 약 4400억유로에 달한다. 대부분 투자펀드를 통한 투자이며 보험사와 연기금 역시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을 비롯한 미국 대형 기술주에 상당한 규모로 노출돼 있다.
미국과 유로존 증시의 상관관계도 역사적으로 높아 월가의 급락이 유럽 증시로 전염될 가능성이 크다.
ECB 경제학자들은 "미국 AI의 후폭풍은 미국만의 문제로 남지 않을 것"이라며 증시 급락이 광범위한 시장 불안과 결합할 경우 "유로존의 금융안정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이들은 조정이 발생한다고 해서 AI 장기 강세론 자체가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AI가 충분히 혁신적인 기술로 자리잡는다면 조정을 거친 뒤에도 장기적으로 주식 밸류에이션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술혁신을 둘러싼 이 같은 '붐-버스트(호황-조정)' 과정은 사후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시장이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미리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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