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개입에 국채발행 축소 신호까지…"베선트, 장기금리 억제 총력"
美장기금리 19년 만에 최고…각종 차입비용 증가 우려
워시 의장 신뢰 강조도 장기금리 상승 압력 경감 차원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최근 행보에서 장기 국채금리 급등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안감이 묻어난다는 월가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엔화 방어를 위한 28년 만의 외환시장 개입부터 장기 국채 발행 축소 가능성을 열어둔 재무부의 미묘한 문구 변경,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대한 공개 지지까지 모두 장기금리의 추가 상승을 막으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월가 트레이더와 전략가들은 최근 일주일 동안 베선트 장관이 취한 일련의 조치가 미국 국채시장에 가해지는 압력을 완화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미국 장기금리는 끈질긴 인플레이션과 연간 2조달러에 육박하는 재정적자에 따른 국채 공급 증가로 최근 19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란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까지 새로운 인플레이션 충격을 가하면서 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4.65% 안팎으로 올라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시작 당시보다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장기금리 상승은 주택담보대출부터 기업 자금조달까지 미국 경제 전반의 차입 비용을 끌어올린다.
프리야 미스라 JP모간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연준과 재무부가 장기금리 수준을 우려하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일본과의 외환시장 개입, 워시 의장에 대한 지지, 장기물 공급의 잠재적 축소는 재무부가 금리시장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시장의 주목을 받은 것은 미국의 엔화 매수 개입이었다. 베선트 장관은 이달 미국으로서는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엔화를 떠받치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동맹국 일본의 엔화 방어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미 국채시장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이 독자적으로 엔화를 방어하려면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직접 엔화를 매수하면 일본이 미 국채를 팔아 달러를 조달해야 할 필요성을 줄일 수 있다.
일본 국채금리 상승이 최근 미 국채 매도세를 부추긴 요인 중 하나라는 점에서도 엔화 안정은 미 국채시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베선트 장관은 나아가 연준의 '해외·국제통화당국 레포기구(FIMA Repo Facility)' 확대도 주장했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일본을 비롯한 해외 중앙은행들은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매각하지 않고 이를 담보로 연준에서 달러를 빌릴 수 있다.
피터 부크바 원포인트BFG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장기금리 상승으로 미 국채시장이 상당히 취약해져 외국인 보유자들에게 국채를 팔지 말라고 권유하는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며칠 뒤 재무부가 분기 국채발행 계획에서 예상치 못한 문구 변경에 나선 것도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재무부는 그동안 향후 이표채와 변동금리채 발행의 잠재적인 "증가(increases)"를 검토한다고 밝혀왔지만 이번에는 잠재적인 "변화(changes)"를 검토한다고 표현을 바꿨다.
단어 하나가 바뀌었지만 채권시장은 이를 장기 국채 발행을 줄일 가능성을 열어둔 신호로 받아들였다. 장기물 공급을 줄이면 수급 측면에서 가격을 떠받쳐 금리 상승 압력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BMO캐피털마켓이 고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61%가 30년 만기 미 국채 입찰 규모의 다음 변화가 확대가 아니라 축소일 것으로 예상했다.
베선트 장관은 최근 채권금리 급등을 촉발한 워시 연준 의장에 대한 방어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워시 의장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언제 낮출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면서 물가 대응 의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키웠다. 이후 채권 매도세가 거세지며 금리가 급등했다.
하지만 베선트 장관은 지난주 CNBC에 출연해 시장이 연준의 잦은 발언에서 "디톡스(detox)"할 필요가 있다며 워시 의장의 새로운 소통 방식을 옹호했다.
그는 연준이 "성장 책무와 물가안정 책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월가에서는 이 같은 행보 역시 워시 의장에 대한 신뢰 훼손이 장기금리를 더욱 밀어 올리는 것을 차단하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다만 재무부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지출 삭감은 재정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고 감세 정책은 향후 10년 동안 정부 부채를 상당폭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새로운 인플레이션 압력까지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것도 채권시장에는 부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리사 쿡 연준 이사를 해임하겠다는 위협을 다시 꺼내면서 중앙은행 독립성을 둘러싼 투자자들의 우려를 키웠다.
존 벨리스 BNY 미국 거시전략가는 "현재 채택된 재정지출 정책과 전쟁을 감안하면 장기금리에 대한 압력을 완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국채 만기별 발행 규모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장기금리를 끌어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5년째 연준의 2% 목표를 웃돌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통제되고 있다는 증거가 나와야 채권 투자자들이 더 낮은 금리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지난 7일에는 미국 노동시장이 크게 약화했다는 고용보고서가 나오면서 국채금리가 하락했다. 오는 12일 발표되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까지 시장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 최근의 금리 하락 흐름에 힘을 실을 수 있다.
피비 화이트 UBS 미국 금리전략 책임자는 재무부의 최근 조치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면서도 "재무부가 장기금리의 추가 상승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 지난해 초부터 행정부의 핵심 목표가 10년물 국채금리를 낮추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10년물 금리는 모기지를 비롯한 미국의 각종 대출금리를 결정하는 기준 역할을 한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그는 지난해 11월 자신을 "국가 최고의 채권 세일즈맨"이라고 표현하며 미 국채금리가 행정부의 성공 여부를 측정하는 "강력한 바로미터"라고 말하기도 했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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