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코스피, AI로 세계 최고 됐지만…韓 IMF 트라우마 이해해야"

"외환시장 완전 개방 못 하는 건 1997년 외환위기 상처 때문"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00대 아래로 내려간 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31% 오른 7486.64로 상승 출발했다. 2026.7.9 ⓒ 뉴스1 이종수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으로 한국 증시가 세계 최고 수준의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1997년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금융시장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진단했다.

FT는 9일 '1997년 금융위기의 유령이 세계 최고 성과를 기록한 (한국) 주식시장을 괴롭힌다(Ghost of 1997 financial crisis still haunts world's best-performing stock market)'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이 AI 반도체 붐으로 세계적인 증시 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외환시장 개방을 둘러싼 정책 당국의 오랜 불안감 때문에 MSCI 선진시장 승격이 계속 무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한국의 MSCI 선진시장 편입 실패 이유를 "1997년 외환위기의 집단 기억"에서 찾았다. 당시 원화는 두 달 만에 가치가 절반 가까이 폭락했고 외환보유액은 수입대금 4~5일치만 남을 정도로 고갈됐다. 한국은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고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러한 경험이 한국 정부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이후 외환시장에 대한 강한 통제를 유지하는 배경이 됐다고 FT는 설명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AI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선진 경제지만, 금융시장은 여전히 1997년 외환위기의 기억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한국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벽은 경제 규모가 아니라 '트라우마'라고 FT는 진단했다.

한국자본시장연구원의 황세운 연구위원은 FT에 "정부는 여전히 'IMF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다"며 "역외 원화 거래를 허용하면 외환시장에 대한 해외 투자자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거래시간을 조금씩 늘리고 외국인 투자자의 옴니버스 계좌를 허용하는 등 시장 개방을 확대했지만 원화의 역외 자유거래는 여전히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도입한 24시간 원화 거래도 국내 결제만 허용하는 제한적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문제는 성과가 아니라 접근성"

FT는 한국 증시가 이미 시가총액 4조4000억달러로 독일과 프랑스를 앞서는 세계 8위 규모이며,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선진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경제력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이미 FTSE 러셀과 S&P 다우존스에서는 선진시장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MSCI는 2014년 감시대상국에서도 제외한 뒤 지금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MSCI도 이번 심사에서 한국의 시장 개방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역외 원화시장 부재와 공매도 결제 제도 등을 이유로 승격을 보류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나무 리 회장은 FT에 "문제는 시장 성과가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가 얼마나 쉽게 투자할 수 있느냐"며 "정책이 반복해서 바뀌는 데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MSCI 승격만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안 끝난다"

FT는 MSCI 선진시장 승격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만능 해법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선진시장 편입이 장기 투자자금을 유치하고 변동성을 낮출 것으로 기대하지만, 한국이 MSCI 신흥시장 지수에서는 24%를 차지하는 반면 선진시장 지수에서는 약 3% 비중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중소형주는 오히려 자금 유출을 겪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CLSA의 심종민 애널리스트는 FT에 "MSCI 승격은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그것만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배당세와 상속세 개편 등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보다 과감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