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중앙은행장 회의 화두는 AI…"혁신인가 괴물인가" 격론
美워시 "생산성 혁명" vs BIS "닷컴버블 닮아"…BOE "AI 킬스위치 검토"
금융안정·고용·은행대출까지 영향…"AI 성공해도 실패해도 위험"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올해 유럽중앙은행(ECB)의 연례 회의 신트라 포럼에서 최대 화두는 금리보다 인공지능(AI)이었다. 세계 주요 중앙은행 총재와 경제학자들은 AI가 생산성을 끌어올릴 혁신이 될 수 있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금융시장과 노동시장, 금융안정에 미칠 파급 효과를 놓고는 엇갈린 시각을 내놨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ECB 중앙은행 포럼에서는 AI가 금융시장과 노동시장, 은행 대출, 사이버보안, 전력 수요까지 경제 전반을 바꿀 변수로 지목됐다. 로이터는 "AI가 이번 포럼의 모든 대화에 스며들었고, 첫 국제무대에 오른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보다 더 큰 화제가 됐다"고 평가했다.
AI가 중앙은행들에게 더 이상 기술산업 이슈가 아니라 금융안정과 물가, 고용, 생산성, 감독체계까지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정책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가장 낙관적인 시각을 내놓은 인물은 워시 의장이었다. 그는 AI를 미국 경제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공급 혁명'으로 규정하며 "AI 혁명은 우리 생애 가장 중요한 경제적 변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시는 AI 투자 확대가 현재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 등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결국 생산성 향상을 통해 공급 능력도 확대할 것이라며, 이는 통화정책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인터넷이 우버 기사 150만명을 만들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겠느냐"며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반면 금융안정 측면에서는 경계론이 잇따랐다. 토르스텐 슬록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AI가 기대 이상으로 성공해도 금융안정에 영향을 미치고, 기대에 못 미쳐도 금융안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AI가 생산성을 크게 높이면 자산가격 버블이 형성될 수 있고, 반대로 막대한 AI 투자에 비해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투자 손실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이테이 골드스타인 교수는 AI 알고리즘이 시장가격을 조작하는 방향으로 서로 학습할 가능성도 우려했다. 그는 AI가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버블을 만든 뒤 붕괴시키는 방식으로 시장을 조작할 수도 있다며, 이는 금융안정에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AI 투자 붐이 1840년대 영국 철도 버블과 1920년대 미국 증시, 1990년대 닷컴버블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BIS는 AI 투자 규모와 속도, 생산성 향상에 대한 높은 기대가 과거 대형 자산버블과 비슷하다며 단기적으로는 상당한 하방 위험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중앙은행(BOE)의 사라 브리든 부총재는 AI 기반 거래 알고리즘이 금융시장 변동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며 시장 전체 거래를 중단시키는 'AI 킬 스위치(kill switch)' 도입 가능성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 감독 분야에서도 새로운 과제가 제시됐다. 토비아스 아드리안 국제통화기금(IMF) 통화자본시장국장은 AI가 대출 심사를 고도화할 수는 있지만 판단 과정이 '블랙박스'처럼 불투명해 감독당국이 의사결정의 근거를 검증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AI가 내린 대출 결정은 판단 과정이 '블랙박스'처럼 불투명해 왜 특정 차주에게는 대출을 승인하고 다른 차주에게는 거절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AI가 차별이나 오류 없이 합리적으로 판단했는지 감독당국이 검증하기 어려워지는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 문제가 새로운 금융감독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AI는 국가와 기업 간 격차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됐다. 사이버 공격 방어 비용이 급증하면서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일수록 AI 시대에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AI가 가장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경우는 역설적으로 AI가 지나치게 성공하는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AI가 인간 노동을 대규모로 대체하면 실업 증가와 소비 위축으로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고, 반대로 AI 투자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현재의 막대한 투자 붐이 금융시장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티프 매클럼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인터넷은 누구의 예상보다 더 큰 혁신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닷컴버블도 있었다"며 "AI 역시 장기적으로 경제를 크게 바꾸겠지만 시장이 현실보다 앞서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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