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급락에 가려진 암호화폐의 진화…"제도권 금융 침투"

스테이블코인 거래 33조달러·토큰화 자산 300억달러
"가격 아닌 도입의 시대"…비트코인 독주 체제 흔들

서울시 강남구 빗썸라운지 강남점 전광판에 가상자산 비트코인 시세가 나오고 있다. 2026.3.5 ⓒ 뉴스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한때는 비트코인 가격만 보면 암호화폐 시장 전체를 설명할 수 있었다. 비트코인이 오르면 거래소와 스타트업, 벤처투자와 수천 개의 토큰으로 자금이 몰렸고 가격이 폭락하면 업계 전체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반토막 나는 동안에도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금융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며 암호화폐 산업의 무게중심이 투기성 자산에서 금융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8일(현지시간)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최근 일주일 동안 2350억달러 증발했지만 암호화폐 산업의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은 더 이상 비트코인 가격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비트코인은 지난주 한때 6만달러 아래로 떨어지며 지난해 최고점 대비 시가총액의 절반가량을 잃었다. 상장지수펀드(ETF) 자금 유출과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으로 인한 자금 이탈, 기관투자가 매수 둔화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알트코인 시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트레이딩뷰에 따르면 비트코인을 제외한 알트코인 시가총액은 2021년 11월 4310억달러에서 현재 1700억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천만 개의 토큰이 발행됐지만 실제 의미 있는 거래가 이뤄지는 토큰은 1700개도 채 되지 않는다고 암호화폐 리서치업체 델파이디지털은 추산했다.

그러나 암호화폐 산업 자체는 오히려 제도권 금융으로 침투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맥킨지와 아르테미스 자료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글로벌 결제 인프라의 일부로 자리 잡으며 연간 수십조달러 규모 거래를 처리하고 있다. 지난해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전년 대비 72% 급증한 33조달러에 달했다.

블랙록의 토큰화 머니마켓펀드(BUIDL)는 출시 2년 만에 운용자산 24억달러를 넘어섰고, 나스닥은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 크라켄과 손잡고 토큰화 주식 거래를 시작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 실물자산 토큰화(RWA) 시장 규모는 30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된다.

과거 암호화폐 시장이 토큰 가격 상승 자체에 집중됐다면 이제는 실제 금융서비스 인프라로 활용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평가다. 비트코인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지만 더 이상 암호화폐 산업 전체를 설명하는 유일한 지표는 아니다.

기술 전문 헤지펀드 EMJ캐피털의 에릭 잭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과거에는 비트코인 가격 차트가 암호화폐 시장의 전부를 설명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가격(price)과 도입(adoption)은 더 이상 같은 의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P웰스어드바이저스의 아담 필립스 역시 "비트코인 가격은 투자자 심리를 보여줄 뿐 실제 기술 도입 정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현재 암호화폐 산업이 인터넷 초창기와 비슷한 국면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닷컴 버블 붕괴 과정에서 수많은 인터넷 기업이 사라졌지만 인터넷 자체는 사회 인프라가 됐던 것처럼, 암호화폐 역시 수많은 토큰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핵심 기술은 금융시스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장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을 가장 중요한 변화로 꼽는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마이크 맥글론은 "가장 중요한 기술은 스테이블코인"이라며 "우리는 암호화폐 시장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과정에 있으며 이제 시작 단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