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축복 혹은 저주]①생산성 혁명 vs 소비구조 파괴…혼돈의 월가

시트리니 '2028 글로벌 지능 위기' 보고서 파장

17일(현지시간) 뉴욕 증권거래소 객장에서 트레이더들이 일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인공지능(AI)이 생산성 혁명을 이끌 축복일지 아니면 대규모 실업을 촉발할 구조적 파괴의 신호일지를 놓고 세계적 큰손들이 모인 월가 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AI는 몇 개월 전만 해도 월가에서 가장 확실한 투자 테마였다.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기업 이익을 확대하며 신세계를 이끌 기술이라는 기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AI가 충분히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너무 빠르게 확산돼 경제를 파괴할 수 있는 종말론에 가까운 극단적 시나리오까지 등장하며 월가는 지금 AI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AI가 생산성 혁명의 출발점일지 아니면 소비 기반을 잠식하는 구조적 충격일지에 대한 확신이 부재한 상황에서 AI 기술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시트리니 리서치의 '디스토피아' 시나리오

논쟁에 더욱 불을 붙인 것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시트리니 리서치(Citrini Research)의 블로그 보고서 '2028 글로벌 지능 위기(Global Intelligence Crisis)'였다. 보고서는 2년 후 고도화된 AI 에이전트가 광범위한 화이트칼라 직무를 대체하고, 소비 위축과 디플레이션 소용돌이를 초래하는 암울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보고서의 핵심 개념은 '지능 대체 나선(Intelligence Displacement Spiral)'이다.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AI 도입을 확대하고, 그 결과 사무직을 중심으로 인력이 감축되면 소비가 위축된다.

소비 둔화는 기업 이익 압박으로 이어지고, 기업은 다시 AI 도입을 가속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노동소득 기반의 경제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능 대체 나선의 기본 논리는 지능의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능은 오랫동안 희소 자산으로 사무직 노동자들의 고임금은 대학 졸업장, 전문 자격증, 분석 능력 등에 기반한다.

하지만 AI가 평균적 수준의 지능을 무한 복제하기 시작하면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지능의 공급이 늘면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AI 위기는 지능의 부족이 아니라 과잉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공동 저자인 알라프 샤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18개월 이내 사무직 근로자의 5%가 감원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실업 증가가 미국처럼 소비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또 다른 개념으로 '유령 GDP(Ghost GDP)'를 제시했다. AI로 생산성과 산출은 증가하지만, 그 부가가치가 노동소득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총수요가 약화될 수 있다는 논리다.

GDP는 성장하지만 가계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경제는 외형상 확대되면서도 소비 기반은 취약해질 수 있다. 보고서는 AI가 빠르게 확산될 경우 실업률이 두 자릿수로 상승하고, 주식시장 급락과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상정했다.

보고서는 이를 "예측이 아닌 사고 실험"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우버, 마스터카드 등 소비·결제 관련 종목과 일부 소프트웨어 주식이 흔들렸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대신 노동소득을 잠식할 수 있다는 가정이 투자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의 로고. 앤트로픽은 대형 언어 모델 '클로드'를 개발했다. 2025.6.25 ⓒ 로이터=뉴스1
"흥미로운 공상과학" 반론…거시경제엔 아직 안보이는 AI 혁명

그러나 글로벌 투자자와 경제학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인사는 해당 보고서를 "흥미로운 공상과학"에 비유하며 기본적인 경제 회계 논리에 어긋난다고 평가했다. 기술 혁신은 과거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일부 일자리를 대체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직무를 창출해왔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실제 데이터도 공포 시나리오와 거리가 있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2025년 미국 생산성 향상이 약 1.9%였지만 AI 기여분은 0.25~0.5%포인트에 불과하다고 추정했다. 미국 근로자의 41%가 직장에서 생성형 AI를 쓴다고 답했지만 매일 사용하는 비율은 13%에 그쳤고, 전체 근로시간 중 AI 관련 시간은 5.7%에 머물렀다.

실리콘밸리에서도 메시지는 엇갈린다. 일부 AI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수년 내 대규모 화이트칼라 일자리 감소를 경고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AI가 기존 업무를 보완하는 도구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시장 변동성은 AI에 대한 심리적 균열을 반영한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저비용 AI 경쟁, 과잉 투자 우려, AI 버블 가능성이 매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에는 '너무 파괴적일 수 있다'는 공포가 변동성을 키웠다.

문제는 AI의 실체를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AI가 기대만큼 수익을 내지 못할까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기존 산업을 급격히 재편할 만큼 강력할까 걱정하는 모순된 심리가 공존한다.

씨티그룹의 히트 테리 글로벌 IT 리서치 책임자는 블룸버그에 "지금 투자자 심리는 매우 취약하며, 종말 시나리오 하나만으로도 포지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뉴욕증권거래소 트레이더 ⓒ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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