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트럼프와 '워시 연준'…그래도 이 조합 반가운 이유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불법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
2024년 대선 토론회 당시,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는 치솟는 물가와 이민 정책을 비판하려다 이 기괴한 한마디로 스스로를 희화화했다. 유권자들의 경제적 고통을 대변할 기회를 괴담으로 날려버린 순간이었다.
당시 기자는 트럼프가 경제 불만을 논리적으로 풀어낼 '언어'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개·고양이 잡아 먹는 이민자 발언에 가려진 미국 경제의 민낯[기자의 눈]
그로부터 2년 뒤, 백악관에 귀환한 트럼프는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투박한 욕망을 가장 세련된 월가의 언어로 포장하고, 실행에 옮길 전문가들을 수집했다.
이미 일론 머스크와 비벡 라마스와미 같은 '빅테크 기술자'들을 영입해 수많은 논란과 반발 속에서도 관료주의 해체라는 거친 실험을 강행했다.
그리고 이번엔 자신의 거친 금리 인하 욕구를 정교하게 설계해 줄 '최고의 금융 기술자', 케빈 워시다.
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줄여 성장을 이루겠다는 트럼프의 요구는 본능적이다. "금리를 내려라. 당장."
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하면 연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독재자가 된다. 여기서 워시의 마법이 등장한다. 그는 트럼프의 원색적인 욕망을 고상한 경제학 이론으로 번역한다.
"AI(인공지능)라는 긍정적 공급 충격이 생산성을 높여 물가를 낮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긴축(QT)으로 기대 인플레이션만 살짝 눌러주면서, 금리를 내려도 됩니다."
결국 금리 인하라는 결론은 같지만, 워시의 입을 거치니 포퓰리즘이 아니라 'AI 시대를 위한 선제적 통화정책'으로 격상된다. 트럼프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신의 본심을 시장이 납득할 논리로 바꿔줄 통역사를 얻은 셈이다.
워시의 등장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현재 정책당국 엘리트들의 무책임한 관료주의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제롬 파월 의장 체제의 연준은 팬데믹 당시 "물가는 일시적"이라는 희대의 오판을 저질렀고, 뒤늦게 실수를 만회하려 기준금리를 네 차례나 0.75%포인트씩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 시장 논리라면 해임감이지만, 그는 '독립성' 뒤에 숨어 책임을 피했다.
이런 오만함은 비단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청년들의 해외투자 열풍(서학개미)을 두고 "해외투자가 '쿨(Cool)'해 보여서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취지로 언급해 논란을 자초했다.
국내 증시를 위해, 또는 환율 대응이라고는 해도 당국이 해외 주식 광고까지 틀어막으며 투자자들의 눈과 귀를 차단하려는 것도 쓴웃음을 짓게 한다. 시장 참여자를 계도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관료주의가 깔려 있다.
워시는 "데이터만 보고 운전하는 백미러 주행은 안 된다"며 연준의 관료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상아탑에 갇힌 이론가가 아니라, 쿠팡과 UPS의 물류 현장에서 AI 혁신을 목격한 '현장파'라는 자부심을 근거로 한다.
연준이 유례 없는 펜데믹 대응에서 실패한 것처럼, AI라는 새로운 물결을 직시하지 않은 채 낡은 모델만 고집해서는 언제든 또 실패한다는 게 워시의 판단이다. 워시의 연준 개혁 의지는 이런 지점에서 출발한다.
물론 그의 'AI 디스인플레이션' 논리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실험적 가설이다. 시장은 그의 신선한 통찰을 반기면서도, 이 실험이 현실에서 인플레이션 재발이라는 부작용을 낳지 않을지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대중의 현실적 욕망을 제대로 읽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드는 엘리트에 질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다가오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와 워시의 실험이 비록 가능성의 영역일 뿐이어도 의미가 있는 이유는, 적어도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읽어내고(금리 인하·성장), 그것을 실현할 '기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시가 '독립성'이라는 난공불락의 외투를 극복하고 연준의 관료주의를 정교하게 수술해낸다면 중앙은행의 새로운 시대를 연 진짜 기술자로 기록될지 모른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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