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생활비전쟁②]韓삼포세대처럼…"내집 포기에 비트코인 몰빵"

FT·워싱턴포스트가 주목한 유영근·이승형 연구원 인터뷰
"내집마련 희망 꺾이면 마음 돌리기 거의 불가능"…출산도 꺼리는 '포기 고착화'

미국 워싱턴에서 최근 거래된 주택 외부에 '판매' 표시가 보인다. 2022.07.07.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주택 가격이 노동 가치를 압도해버린 시대, 대한민국 청년들이 마주한 거대한 절벽은 이제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삼포세대' 경제학자들이 미국에서 주택 문제와 노동-투자 행동 사이 숨겨진 연결고리를 입증하는 논문을 발표하며 파이낸셜타임스(FT)부터 워싱턴포스트(WP), 보수언론 폭스뉴스까지 유수한 경제 매체들이 이들의 논문을 앞다퉈 소개했다.

기성세대가 게으름이나 무책임으로 치부했던 청년 세대의 행동이 사실은 너무 비싼 주택을 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경제적 현실에 대한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매체들은 평가했다.

논문의 주인공들은 시카고대와 노스웨스턴대에서 각각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영근 연구원과 이승형 연구원.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논문 '포기: 주택 가용성 하락이 소비, 노동 의욕 및 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한국의 삼포세대 정서가 미국 젠지의 행동 양식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고교 동문인 젊은 한국인 경제학자들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주택 절벽이 부순 청년 세대의 경제 행동에 대한 설명을 들어봤다.

"어려우면 더 노력한다? 임계점 넘으면 반대로 행동"

일반적인 경제학 모델은 목표가 어려워질수록 더 열심히 일하고 소비를 줄인다고 가정한다. 두 연구원이 포착한 현실은 정반대였다. 주택 구매 가능성이 줄어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인간은 합리적으로 노력하기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유영근: "일반적인 경제학적 모델에서는 목표가 어려워지면 더 열심히 일하고 소비를 줄이지만, '포기'라는 개념은 다릅니다. 어렵고 어려워지다가 어느 한계를 넘어버리면 그 순간 갑자기 모든 노력을 오히려 반대로 합니다. 일도 덜 하고 소비는 늘려버리는 거죠. 이 한계를 넘는 순간 부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포기라는 개념은 근로 의욕(Work Effort)의 감퇴가 가장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경제학적으로 일하는 것 자체에 대한 비효용(Disutility)이 있는데, 어차피 이렇게 해봤자 큰 미래 보상이 없다고 판단하면 당장 고생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거죠. 소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집 사느라 모아놨던 돈을 포기하면 해외여행을 가거나 명품, 차를 바꾸는 등 당장 즐길 수 있는 비필수재(Non-necessity)에 쏟아붓게 됩니다."

30세에 꺾인 희망, 40세에 극복할 확률 단 1.7%

논문에서 제시한 가장 충격적인 데이터는 '포기의 고착화'다. 미국에서 30세 청년이 은퇴 시점까지 주택 구매 가능성을 50%로 보는 경우 10년 후인 40세가 되어서 이를 극복할 확률은 단 1.74%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서 98% 이상의 청년이 주택 구매라는 희망이 한 번 꺾이면 이를 회복하지 못한 채 평생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유영근: "사람들은 자기 삶의 궤적(Life Trajectory)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행동합니다. 30살에 '어차피 안 되겠다' 싶어 일도 줄이고 소비를 늘리면, 나중에 임금이 오르거나 집값이 떨어지는 좋은 신호가 켜져도 이미 포기했던 행동들이 누적되어 삶을 다시 바꾸기가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은 '도박성 투자'에 매몰된다. 노동만으로는 격차를 줄일 수 없으니 가상화폐나 고위험 레버리지 상품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이승형: "노동을 늘려도 주택을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한 번에 큰 수익을 노리는 공격적 투자 메커니즘에 빠지는 것입니다. 반면 조금만 더 하면 집을 살 수 있는 그룹은 오히려 리스크를 줄이며 안정적인 저축으로 돌아섭니다."

"포기의 연쇄 반응…물려줄 자녀 없으니 저축도 안해"

최근 젊은 세대가 '욜로(YOLO)'나 '영끌'에 집착하는 것을 두고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은 생각이 다르다'며 혀를 찬다. 한국은행의 이창용 총재도 젊은층이 많은 한국의 서학개미에 대해 "쿨한 척" 하는 행동이라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두 연구원은 구조적 문제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유영근: "한 세대 만에 인류의 유전자가 변한 게 아닙니다. 학자로서는 왜 그런 선호(Preference)가 바뀌었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정말 고치고 싶다면 젊은 애들은 어쩔 수 없지라고 끝낼 게 아니라, 어떤 사회구조적 이유 때문에 그렇게 변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의 저출생 문제와 관련해 연구원들은 의미심장한 분석을 내놓았다. 주택 포기가 출산 포기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의 무서움이다.

▶유영근: "자산 축적의 가장 큰 동기는 부를 이전할 자녀 세대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집을 포기하면 출산도 함께 포기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개인은 자산을 축적해봤자 물려줄 자녀가 없으니 저축을 더 안 하고 일을 더 줄이는 행동이 훨씬 강하게 나타납니다. 주택과 출산이 강하게 보완적인 상황에서 포기의 연쇄 반응은 사회 전체의 활력을 파괴합니다."

정책의 해법: "보편 복지보다 '포기 직전' 20대 그룹 타기팅"

두 학자는 논문에서 해결책으로 '정밀한 타기팅 지원'을 제안했다. 모두에게 똑같이 돈을 나눠주는 보편적 복지보다, 집을 살 수 있는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청년들에게 집중적인 지원을 할 때 효과가 3배 이상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이승형: "20대 전체에게 1000달러를 주는 것보다 '포기 직전'의 사람들에게 선별 지원할 경우 사회 전체적 효용이 약 3.2배 높게 나타납니다. 핵심은 지원을 통해 행동의 변화(Behavioral Change)를 일으킬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입니다. 지원이 없었다면 포기했겠지만, 조금의 지원으로 주택 보유나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논문에 따르면 미국 1990년생 기준 시뮬레이션에서는 청년들의 부채만 탕감해 '순자산 0'으로 만들어주어도 주택 구매 확률이 80% 이상으로 급등했다. 다만 한국, 특히 서울은 집값이 워낙 높아 단순한 부채 해소 이상의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두 연구원은 덧붙였다.

특히 정부가 주택 소유의 희망을 잃기 직전인 20대 청년층(특히 순자산이 0에 가까운 층)에게 소액의 주택 보조금을 지원할 것을 두 연구원은 제안했다. 30~40대에 지급하는 사후적 지원보다 20대에 지급하는 소액의 보조금이 '노력하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 평생의 노동 의욕과 저축 규율을 바로잡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논리다.

두 사람은 인터뷰를 마치며 정책 입안자들에게 "어쩔 수 없다고 방치하기보다, 왜 청년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 한 단계 더 깊이 생각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의 집값 문제는 미국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할 수 있기 때문에 청년 세대가 다시 노동의 가치를 믿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희망의 임계점을 낮춰줄 필요성이 있다고 두 사람은 강조했다.

왼쪽부터 이승형(노스웨스턴대) 유영근(시카고대) 연구원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