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금리차 축소에도 엔저 요지부동…韓 원화 '동조화' 위험

니혼게이자이신문 "무역적자, 디지털투자, 해외투자 등 구조적 요인"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 지폐를 살펴보고 있다. 2025.4.22/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도쿄 외환시장에서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 축소가 엔화 강세를 유발한다'는 정설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미일 금리차가 3년 만에 최저로 좁혀질 것이 유력하지만 엔화 가치는 여전히 달러당 155엔 근방에 머물어 사상 최저에 가까운 약세다.

엔화 약세의 미스터리는 비단 일본 만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엔화와 동조화 경향을 보이는 한국 원화도 일본과 유사한 구조적 압박에 양국 통화당국은 앞으로 환율 방어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질 전망이다.

日 금리인상 '유력'…'금리차 축소→엔고' 공식 실종

일본은행(BOJ)은 18~19일 열리는 금융정책 결정회의에서 추가 금리 인상을 논의할 예정이다. 시장이 예상하는 인상 확률은 95%에 달한다.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최근 3회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이론적으로는 엔화 강세가 나타나야 할 시점이지만, 환율은 연초 수준에서 요지부동이다.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결정하면 미·일 정책 금리차는 약 3년 만에 최소 수준으로 축소되며, 이미 실질 금리차는 2년 반 만에 최저 수준까지 좁혀진 상태이다.

통상적으로 미일 금리차가 축소되면 엔화 강세, 달러 약세를 유도하지만 달러당 환율은 연초 157엔 수준에서 거의 변화 없이 155엔 근방에서 요지부동이다.

금리차 축소에도 엔저가 지속되는 '수수께끼'는 일본 경제의 근본적인 구조적 요인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무역적자, 디지털 적자, 해외 투자 확대와 같은 일본 경제의 뿌리 깊은 구조적 요인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클라우드 서비스와 인공지능(AI) 보급 등으로 인한 '디지털 적자'가 심각하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경제산업성 전망에 따르면 2035년 일본의 디지털 적자가 18조 엔에 달해 원유 수입액을 넘어설 수 있다. 여기에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를 통한 개인들의 대규모 해외 투자 자본 유출이 매년 10조 엔 규모의 엔화 매도 압력을 키운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한국 원화, 일본과 닮은꼴 구조적 압박…"방어 쉽지 않다"

문제는 한국의 원화 역시 일본과 유사한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며 환율 잡기가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원화와 엔화가 최근 '아시아 통화'라는 하나의 묶음으로 인식되며 동반 약세를 보이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분석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원-엔 환율 상관관계는 2007년 이후 최고치로 급등했으며, 이는 아시아 통화 쌍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해당 통화들이 미국 금리와 변화하는 글로벌 위험 감정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한국 역시 일본의 NISA 자금유출과 마찬가지로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가 원화에 강한 하방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만성적 서비스 수지 적자는 일본의 디지털 적자와 비슷하고 초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잠재 성장률 하락은 한일 양국 통화의 신뢰를 갉아 먹는 공통 요인이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려 엔화가 일시적으로 반등하더라도, 디지털 수지 적자와 개인들의 해외 투자라는 거대한 '엔화 매도' 물줄기를 돌려세우지 못한다면 엔화 약세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시 수출 경쟁력과 경상수지 흑자에도 자본 유출과 구조적 적자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원화 약세를 차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