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디폴트 가지않고 살아남는 길 여전히 열려있어
7월 5일 국민투표에서 '찬성' 다수가 나온 뒤 3차 구제금융 협상 진행
- 최종일 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유럽중앙은행(ECB)이 28일(현지시간) 그리스 은행들에서 유동성이 마르지 않도록 긴급유동성지원(ELA)의 총액한도를 종전대로 890억유로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대량의 예금인출을 겪고 있는 은행들로서는 성에 차지 않겠지만 ECB의 지속 결정으로 그리스 금융 시스템은 붕괴되지 않았다.
은행 영업 정지가 29일 발표되긴 했지만 그리스 정부가 현재의 혼란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는다면 은행들은 유로화를 확보해 영업을 재개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이달이 지나가면 상황이 급속하게 바뀐다.
가장 직접적인 난관은 30일 만기가 돌아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부채 16억유로이다. 구제금융이 없다면 사실상 갚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실질적인 관점에서, IMF의 채무불이행은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 있는 한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파인내셜타임스(FT)는 전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28일 성명에서 위기에 대해 "균형잡힌 접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IMF에 대한 체납은 엄밀하게 디폴트로 고려하지 않겠다고 이미 밝혔다. 민간 채권단 부채에만 신경을 쓰겠다는 의미다.
유로존 구제금융 협약에 따르면 그리스 국제 채권단은 IMF가 부채를 상환받지 못하면 연쇄지급 불능조항(cross-default clauses)을 걸고 넘어질 수 있으며, 이는 27일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논의됐다.
이 조항은 채무자가 차입계약을 맺을 때 기존의 어떤 차입에 대해 지급불능 선언을 하면 여타 차입도 자동적으로 디폴트되게 한 것이다. 하지만 개별국 정부들이 이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ECB의 긴급자금 지원 결정은 IMF 부채가 제때에 상환되지 않더라고 개별국 정부가 이에 개의치 않겠다는 의향을 나타낸 것임을 시사한다고 FT는 진단했다.
이는 그리스가 7월 5일에 은행들이 영업을 중단한 가운데 새로운 통화 발행을 준비하지 않고서도 국민투표를 치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반대표 유세를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지만, 찬성표가 나오면 정부는 채권단의 요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상황에서도 난관은 있다. 우선,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 겸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채권단 개혁안에 대한 치프라스의 비난으로 인해 유로존 정부들이 현재 그리스 정부가 이를 이행하는 데 대해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셀블룸 의장은 "'찬성표'가 나온다면, 우리가 누굴 신뢰할 수 있으며, 누가 이것을 이해할까"라고 반문했다.
지난 주말,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이 처음으로, 신뢰를 회복하는데 필요하다면 현 정부가 대대적 개각에 나서거나 심지어 연정을 구성할 수도 있다고 말한 점은 다행스럽다.
그는 27일 유로그룹에 "국민들이 개혁안에 서명하라고 분명하게 요구한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것이다. 심지어 연정도 감수할 것이다"고 밝혔다.
치프라스 총리가 속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 내에서 일부는 투표에서 진다면 정부가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2011년 유로존 부채위기 때 등장했던 기술관료 정부가 다시 들어설 가능성도 있다.
치프라스 정부가 힘을 잃거나 정권을 놓는다고 모든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리자 이외의 정당이 집권해도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차 구제금융이 30일 기한이 만료되면, 어떤 정부라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요청해야 한다. 구제금융과 관련해서는 모든 유로존 국가의 승인이 필요하며, 독일의 경우에는 분데스타크(하원)의 표결도 거쳐야 한다.
현재 구제금융이 새로운 프로그램의 기초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새 정부는 완전히 새로운 구제금융 패키지를 협상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7월 20일까지 마련돼야 한다. 이날에는 ECB의 부채 35억유로를 상환해야 한다. ECB 부채로 디폴트에 빠지면, 새로운 구제금융을 확보하고 그렉시트를 피하겠다는 희망은 완전히 사라진다.
한편 유로존의 정식 명칭인 유럽통화동맹(EMU)의 조약에는 유로존 회원국의 탈퇴와 관련한 조항이 없다. 특정 회원국을 나머지 회원국들이 내쫓는 절차를 담은 조항도 마련돼 있지 않다. 그렉시트가 실제로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회원국이 자발적인 판단에 따라 유로존을 탈퇴하고자 하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EU 탈퇴를 선택하는 것이다. EU의 경우, 리스본 조약에 따라 회원국의 자발적 탈퇴가 가능하다. 우선 탈퇴의사를 통보한 뒤 유럽이사회와의 협의와 유럽의회 동의를 거쳐 유럽이사회 투표 등을 거치면 된다.
하지만 ECB가 자금을 끊고 동시에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진다면, 그렉시트로 갈 수밖에 없는 길이 불가피하게 열릴 수 있다. 그리스는 연금과 공무원 월급을 지급하기 위해 유로화 대신 새 결제수단으로 차용증서(IOU)의 발행할 수밖에 없다. 이 결제수단은 그리스의 새 통화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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