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안 켰으니 출근 전?"…회사 화장실서 숨진 직원, '업무 재해' 불인정

중국 프로그래머 과로사 잇달아…유족 재심 청구

클립아트코리아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중국에서 회사에 출근한 뒤 사내 화장실에서 숨진 30대 프로그래머의 사망을 두고 당국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 화장실에 갔고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선전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남성 A(39) 씨는 지난 4월 회사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던 그는 이날 아침 정상적으로 출근 기록을 남긴 뒤 11층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가지 않고 곧바로 2층 화장실로 향했다.

이후 A 씨가 자리로 돌아오지 않자 동료들이 화장실에서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했다.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회사 측은 A 씨의 죽음을 업무상 사망으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관할 인적자원사회보장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국은 A 씨가 발견 당시 "근무 장소에 있지 않았고 수행하고 있지도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출근 기록은 남겼지만 컴퓨터를 켜거나 업무를 시작하지 않은 채 곧바로 화장실로 갔기 때문에 아직 '근무를 시작한 상태'가 아니라는 취지였다.

이에 A 씨의 아내는 해당 결정에 대해 행정 재심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은 A 씨가 평소 회사에서 상당히 많은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4년간 근무하면서 밤 9시를 넘겨 퇴근하는 일이 반복됐으며 한 차례는 새벽 2시 가까이 근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중국 인터넷 기업에서는 장시간 근무와 무급 초과 근무가 여전히 만연해 있으며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직원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법에 따르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은 일시적인 보상금 외에도 장례비와 부양비를 받을 수 있다. 올해 일시불 지급액은 약 110만 위안(약 2억 2600만 원)이다.

하지만 A 씨의 고용주가 그의 가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했지만 그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베이징 주오하오 법률사무소의 한 변호사는 화장실 사용은 업무와 밀접하게 관련된 필요하고 합리적인 생리적 욕구이며 직장 내 화장실은 업무 환경의 연장선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A 씨의 과중한 업무량이 가족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지만 공식적인 인정을 받으려면 추가적인 법적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24년 광둥성 법원은 직장 화장실에서 사망한 요리사의 사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면서 중국 온라인상에서는 당국의 판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한 누리꾼은 "동정심이 없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장시간 노동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무엇보다 삶이 먼저다"라고 강조했다.

중국에서는 과로로 인한 프로그래머들의 사망 사례가 잇따르면서 장시간 노동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수년간 극심한 업무 강도에 시달리던 32세 프로그래머가 숨진 뒤에도 약 8시간 동안 업무 메시지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2023년에는 중국 동부 지역의 30대 남성이 104일 연속 근무하면서 단 하루만 쉬었다가 장기부전으로 숨진 사례도 전해졌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히 '화장실에서 발생한 사망'에 그치지 않고 출근의 기준과 업무상 재해의 범위, 그리고 중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 문제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ro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