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케데헌부터 인왕제색도까지…런던서 만나는 2000년 한류의 뿌리
특별전 '한국: 2000년 창의의 여정'…'이건희 컬렉션'서 엄선
- 이지예 객원기자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류의 뿌리가 세계 문화예술 중심 도시 런던 한복판에 펼쳐졌다. 영국박물관이 1984년 이후 처음으로 선보인 대규모 한국 특별전 '한국: 2000년 창의의 여정'(Korea : 2000 years of Creativity)을 통해서다.
이번 전시는 케이팝데몬헌터스(이하 케데헌)부터 방탄소년단(BTS), 작가 한강의 소설까지 한류가 전 세계 최신 유행을 이끄는 아이콘으로 우뚝 선 전례 없는 순간에 열린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사전 관람을 위해 찾은 한국 특별전은 이집트 미라와 그리스·로마 신전 조각, 중국과 인도의 고대 유물 등 전 세계 주요 문명의 보고로 불리는 영국박물관 한가운데 당당히 자리잡고 있었다.
기존 영국박물관 내 한국 상설관의 역할이 한국 소개에 그쳤다면,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이 신비로운 터널 속에 들어온 듯한 공간을 지나며 기원전 300년경부터 현대에 걸친 한류의 '역사적 뿌리'를 직접 추적해 나가도록 유도했다.
총 100건의 출품작 중 대다수가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의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2만3000여 점의 '이건희 컬렉션'에서 나왔다. 영국박물관이 조명하려 한 한국 예술의 '독창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작품들이 엄선됐다.
제시카 해리슨-홀 영국박물관 아시아관 총괄 책임자는 "음악, 패션, 음식 등 한국 현대 문화가 친숙해진 시기 가장 아름다운 한국의 보물을 만날 기회"라고 말했다.
터널로 들어서기 전 관람객들은 벽면에 펼쳐진 한반도 지도를 먼저 마주한다. 지도는 중국 대륙과 광활한 바다 사이 위치한 작은 나라 한국이 어떻게 독자적인 문화예술을 발전시켜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자극한다.
터널 초입의 고대 유물과 삼국시대 미술품은 한류가 가진 뿌리의 '깊이'를 강조했다. 나아가서 역사 속의 한국이 바깥 문명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늘 이를 재해석해 자체적인 문화로 승화해 온 패턴을 드러내 보였다.
전시 곳곳의 '포인트'가 자칫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내용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췄다. '구원으로 향하는 소리'(Sounding to the path to salvation), '흙으로 빚은 도덕적 품격'(Moral purity in clay)처럼 시적 표현이 담긴 작품 설명이 흥미를 유발한다.
주요 출품작인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새소리와 빗소리가 더해진 모습이 맞은편에 거대한 영상으로 구현돼 있다. 해외 관람객들이 막 비가 갠 뒤 안개가 자욱한 서울 인왕산의 정취를 더욱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특별히 고안한 장치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케데헌에 등장한 '일월오악도'와 런던에서 처음 공개된 '까치와 호랑이'다. 두 작품 앞에 케데헌 속 명장면을 배치해 한류팬들이 주인공 헌트릭스의 무대와 호랑이 '더피', 까치 '서씨'를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했다.
전시 말미는 20세기 격변의 한국 시대상을 담아낸 강렬한 작품들이 장식했다. 이중섭의 '묶인 사람들', 신학철의 '한국근대사-종합', 백남준의 '브람스'에 이어 현대 예술가 서도호의 '자화상'이 한류의 뿌리를 돌아보는 2000년 여정을 매듭짓는다.
김상아 영국박물관 한국관 큐레이터는 "이건희 컬렉션의 치우침 없이 다양한 구성 덕분에 가능한 전시였다"며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세계인과 나누며 이 회장의 수집 철학에 동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전 열렬한 예술 애호가이던 이 회장은 "문화 유산 수집과 보존은 인류의 미래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전시관을 나서는 길. '예술가의 임무는 미래를 생각하는 것"(The artist's job is to think about the future)이라는 백남준의 어록이 관람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한국만이 아닌 세계인의 유산으로서 한류의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 기획한 대영박물관의 한국 특별전은 10월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린다. 까치와 호랑이·일월오악도를 담은 기발한 '뮷즈'(박물관 기념품)도 한류팬들을 기다리고 있다.
ez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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