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냐 유럽이냐'…푸틴, 친서방 아르메니아에 EU행 재고 압박

옛 소련국 상대 견제구…러 군사기지 철수 가능성도 거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 2024.05.09 ⓒ AFP=뉴스1

(서울=뉴스1) 유철종 전문위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친서방 노선을 강화하고 있는 캅카스 지역의 옛 소련 국가 아르메니아에 러시아권에 잔류할지, 유럽으로 통합될지를 서둘러 결정하라고 압박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와 회담하고 아르메니아의 유럽연합(EU) 가입 추진 문제를 거론하며 이같이 촉구했다.

푸틴 대통령은 아르메니아의 EU 가입 추진에 대해 "주권국가의 정당한 권리"라고 평가하면서도, 아르메니아가 현재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에 가입해 있는 만큼 여러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AEU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옛 소련권 경제협력체로, 러시아 외에 벨라루스·카자흐스탄·아르메니아·키르기스스탄 등이 참여하고 있다.

그는 "아르메니아가 EU 가입 문제에 대해 더 빨리 입장을 정할수록 좋다"며 "러시아로서는 앞으로 양국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르메니아의 결정에 따라 러시아가 향후 양국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지 결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그러면서 아르메니아가 EU 가입 문제를 국민투표에 맡길 것을 재차 제안했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 5월 말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EAEU 회원국들과 함께 아르메니아에 EU 가입 추진과 EAEU 잔류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파시냔 총리는 관련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겠다며 "EU와 EAEU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불가피해질 때까지 EAEU 안에서 계속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아르메니아는 오랫동안 러시아 주도의 옛 소련권 군사협력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와 경제협력체 EAEU 활동에 참여하고, 자국 내 러시아군 기지 주둔까지 허용하며 모스크바와 긴밀한 군사·경제·외교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2020~2023년 숙적 아제르바이잔과의 잇따른 무력 충돌 과정에서 러시아와 CSTO가 기대했던 안보 지원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CSTO 참여를 중단하고 EU 및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등 친서방 노선으로 기울었다.

아르메니아는 지난 5월 미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3월에는 EU 가입 절차 개시에 관한 법률을 채택한 뒤 유럽으로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를 자국 영향권으로부터의 이탈 움직임으로 보고 아르메니아산 화훼류와 농산물 등의 수입을 제한하는 한편, 특혜 가격에 제공해 온 석유·가스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경제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아르메니아가 EU와 관계 강화를 계속할 경우 '우크라이나 시나리오'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아르메니아 북서부 귬리에 주둔 중인 러시아 군사기지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아르메니아가 귬리의 러시아 기지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다"면서 "우리는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튀르키예 국경과 가까운 아르메니아 제2도시 귬리에는 수천명 규모의 러시아 제102군사기지가 주둔하고 있다. 전차·기계화부대와 S-300 방공체계 등을 갖춘 이 기지는 양국 협정에 따라 2044년까지 주둔이 보장돼 있다.

기지는 아르메니아에 대한 러시아의 안보 보장을 상징하는 시설이자, 튀르키예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견제하는 러시아의 남캅카스 지역 군사 거점 역할도 하고 있다.

cj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