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무기화' 드러낸 세우타 사태…유럽 분열 악용 우려도
'모로코 배후설' 부상…벨라루스·튀르키예도 과거 이민자 무기화
유럽 각국 스페인 비판 동참…적성국의 EU 분열 악용 우려도
- 김지완 기자
(서울=뉴스1) 김지완 기자 = 지난달 말 7만여 명의 이민자가 모로코에서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스페인령 세우타에 유입된 사건은 이민자 문제가 정치적 목적으로 무기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0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아울러 이번 사태는 이민자 문제를 둘러싼 유럽 내부의 정치적·사회적 갈등과 취약성도 다시 한번 드러났다. 적대국들이 이 문제를 둘러싼 유럽의 분열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우타 사태에는 모로코가 배후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스페인이 모로코의 경쟁국인 알제리와 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최근 알제리를 방문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민자 유입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이민자는 WP에 모로코 당국이 자신들을 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제빵사 겸 웨이트리스인 이브티삼 사르지(34)는 모로코 경비원들이 "'육로로 들어오지 말고 바다를 건너라'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세우타 사태 수사에 정통한 전직 스페인 고위 안보 당국자는 당국이 공식적으로는 모로코를 옹호하고 있지만, 모로코의 역할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사태가 "힘의 과시였다"라며 모로코가 독립한 이후 세우타와 스페인의 또 다른 북아프리카 영토인 멜리야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며, 스페인이 이를 포기하도록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해 왔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스페인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이 배후라는 주장도 나왔다. 산체스 총리는 유럽 지도자 중에서도 가자 전쟁과 이란 전쟁에 가장 비판적인 인물이었다.
이번 사태가 곧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스페인 국영 방송사 RTVE에 따르면, 스페인 당국은 특정 세력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6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서 모로코 소셜미디어를 통해 8월 15일 세우타로 또 다른 대규모 유입을 촉구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보수 성향인 바르트 데 베버 벨기에 총리는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고자 하는 누구든지 이주를 지정학적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인 것 같다"며 "유럽이 국경을 닫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민자의 무기화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21년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는 관광 비자를 대량으로 발급한 뒤 이민자들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폴란드 쪽으로 유입시켰다. 당시 유럽연합(EU)은 이를 '국가 주도의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규정했다.
같은 해 니카라과의 실권자인 다니엘 오르테가는 미국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미국 입국을 희망하는 쿠바 및 기타 국가 출신 이민자들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기도 했다.
지난 2015년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EU가 재정 지원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시리아 난민들을 "버스에 태워" 유럽으로 쏟아지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번 사태 이후 유럽 내에서는 스페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으나, EU가 이번 사태로 인해 분열된 것으로 비치는 것에 대한 경계심도 감지된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 27개 EU 회원국 중 22개국 정상은 지난 1일 공동 서한을 통해 스페인이 "매우 많은 수의 불법 이민자들을 합법화하는 것과 같이 유입 요인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을 취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올해 스페인 정부가 수십만 명의 이민자들에게 합법적 지위를 부여한 것을 지칭한 것이다.
이 서한에는 중도좌파 성향인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중도우파 성향인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동참했다.
이탈리아는 스페인과의 '솅겐 조약'을 일시 중단하고, 스페인에서 들어오는 제3국 국민을 대상으로 항만과 공항에서 국경 검사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페인 측은 이러한 비판을 정치적 기회주의라고 일축하며, 합법화 정책이 세우타 국경 비상사태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산체스 총리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유럽국들의 세우타 사태 비판이 "이기적이고 분열을 조장하는 불법적 반응"이라고 규탄했다.
아울러 이탈리아에 대한 맞불 조치로 스페인 정부는 이탈리아에서 입국하는 여행자를 대상으로 임시 국경 검사를 도입하기로 했다.
마그누스 브루너 EU 내무·이민 담당 집행위원도 합법화 조치와 세우타 사태 사이의 연관성은 없지만 스페인의 정책이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고 지적했다.
다만 지난 4일 EU 내무장관들은 비판의 수위를 낮추고 스페인에 대한 연대를 표명했다. 이는 이번 사태로 EU가 분열된 것으로 비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WP는 "일부 관리와 분석가들은 세우타 사건이 EU의 적대국들에 이민 흐름이 어떻게 EU 내 분열을 부추길 수 있는지 보여줬다고 경고한다"고 전했다.
gw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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