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클라시코'를 넘어 하나의 팀이 된 스페인[최종일의 월드 뷰]

19일(현지시간) 로드리를 비롯한 스페인 선수들이 미국 뉴욕 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의 2026 FIFA 월드컵 결승전 승리 후 FIFA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2026.07.19 ⓒ AFP=뉴스1
19일(현지시간) 로드리를 비롯한 스페인 선수들이 미국 뉴욕 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의 2026 FIFA 월드컵 결승전 승리 후 FIFA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2026.07.19 ⓒ AFP=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스포츠팀은 때로 지역·계층·민족·정치·세대의 정체성이 투영되는 상징이 된다. 한국에서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가 광주와 호남 지역민들에게 지역적 소외감과 저항 의식, 그리고 자존심을 투영하는 상징이었다면,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고도성장기 도쿄를 중심으로 한 전후 일본의 주류와 성공 신화를 대변했다.

스페인에서는 프로축구가 그 역할을 해왔다.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한 국가 정체성과 자치권 확대 및 독립을 요구해 온 카탈루냐의 지역 정체성은 오랫동안 긴장 관계를 형성해 왔다. 그리고 그 대립은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대결을 뜻하는 이른바 '엘 클라시코' 라이벌 구도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 올해 북중미 월드컵 스페인 대표팀에는 바르셀로나 소속 선수가 8명이나 포함됐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 선수는 단 한 명도 선발되지 않았다. 스페인 대표팀 역사상 전례 없는 구성이다. 한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이번 대표팀은 바르셀로나가 스페인 축구를 장악한 결과일까. 아니면 스페인 축구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법을 배운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스페인 대표팀이 걸어온 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반공과 권위주의를 내세운 프랑코 독재 시절(1939~1975년), FC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는 상징이었다. 정권이 지역의 자율성을 억누르던 시대에 바르셀로나의 경기장은 카탈루냐인들이 억눌린 불만을 비교적 안전하게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클럽 그 이상'이라는 바르셀로나의 구호 역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됐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프랑코 정권 아래에서 스페인의 국제적 위상을 과시하는 중앙집권적 국가주의의 상징으로 성장했다. 두 클럽의 라이벌 관계는 단순한 경기 결과를 넘어 스페인 사회의 지역적·정치적 균열을 반영했다. 이러한 갈등은 국가대표팀에도 스며들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였지만 스페인은 오랫동안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하나의 팀으로 결집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클럽과 지역 정체성이 국가대표라는 공동체 의식과 충돌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1950년 월드컵 4위가 2010년 이전까지 스페인의 월드컵 최고 성적이었다. 조별리그 탈락도 부지기수였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스페인은 "여전히 유럽의 고질적인 기대 이하 팀이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혹평을 듣기도 했다.

스페인 팬들이 20일(현지시간) 마드리드에서 아르헨티나와의 2026 FIFA 월드컵 결승전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2026.07.20 ⓒ 로이터=뉴스1

변화는 유로 2008을 앞두고 시작됐다. 국가대표팀을 맡은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의 상징이자 오랜 주장이었던 라울 곤살레스를 과감히 제외했다. 과거의 명성과 기존의 위계보다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팀의 구조를 우선하겠다는 신호였다.

아라고네스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발렌시아 등 다양한 클럽의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으며 결속을 강조했다. 그 결과 스페인은 유로 2008에서 44년 만의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서로 다른 클럽과 지역의 선수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지닌 채 하나의 팀으로 뭉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첫 우승은 그 결속이 만들어낸 황금기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우승 직후 조제 모리뉴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에 부임하면서 엘 클라시코는 극도로 거칠어졌다. 클럽 간의 충돌은 대표팀 동료들 사이의 관계와 개인적인 우정마저 위협했다.

이때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 이케르 카시야스와 바르셀로나의 핵심 선수 차비 에르난데스가 직접 연락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클럽 간의 갈등이 대표팀과 개인적인 우정까지 파괴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리고 대표팀에 소집된 동안만큼은 클럽 간의 갈등을 내려놓기로 약속했다.

아라고네스에 이어 국가대표팀을 이끈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 역시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보다 선수들을 통합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스페인은 유로 2012까지 제패하며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황금기를 열었다. 서로 다른 클럽과 지역의 선수들이 더 큰 공동체를 위해 각자의 정체성을 잠시 뒤로 미룰 수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그리고 오늘날 스페인 대표팀에서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카탈루냐의 유소년 시스템 출신을 포함한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레알 마드리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한때 스페인 축구를 대표했던 두 클럽의 관계를 생각하면 상징적인 변화다.

레알 마드리드와 깊은 연관이 있는 매체들은 한때 이러한 선수단 구성에 충격과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루이스 데 라 푸엔테 현 대표팀 감독은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선수들이 어느 클럽 출신인지보다 스페인 대표팀을 대표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게 가장 위대한 팀은 스페인 국가대표팀"이라며 클럽 간 라이벌 구도로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을 일축했다.

물론 정치적 긴장이 이전보다 완화된 배경도 있다. 2017년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를 둘러싼 갈등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장기간 이어진 소모적 대치와 경제적 불확실성은 지역 사회에 깊은 피로감을 안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카탈루냐 독립 열기는 과거만큼의 폭발력을 잃었고, 사회적 긴장이 완화되면서 대표팀을 둘러싼 정치적 긴장 역시 이전보다 약해졌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스페인 대표팀 자체에 있었다. 서로 다른 클럽과 지역의 선수들이 하나의 팀으로 뭉쳐 성공을 거둔 경험을 오랜 시간 축적하면서, 대표팀은 어느 한 클럽이나 지역의 전유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체성이 공존하는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바르셀로나 선수든 레알 마드리드 선수든 각자의 정체성을 지닌 선수들이 그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도 더 큰 목표를 위해 하나의 방향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 것이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