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들면 좌파, 에어컨은 극우?"…유럽 덮친 '냉방의 정치'
'40도 살인 폭염'에 프랑스·독일 등서 정치적 쟁점화
'에어컨 보급' 우파 포퓰리즘과 '환경 보호' 좌파 대치
- 이지예 객원기자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부채 쓰면 극좌, 선풍기는 중도, 냉방기는 보수, 에어컨은 극우."
살인 폭염이 덮친 유럽에서 에어컨 설치 확대를 둘러싸고 정치적 논쟁이 격화하자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풍자 글이다. 에어컨 논란이 프랑스, 독일 등에서 주요 선거 쟁점으로 떠오르며 '냉방의 정치'가 과열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유럽에서는 각국 정부가 주도하는 대대적인 에어컨 보급을 주장하는 우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세력과 기후변화 대응 등 환경 보호를 우선하는 좌파 진영 사이 정치적 갈등이 분출하고 있다.
내년 4월 대선을 치르는 프랑스에서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앞장서 정부 보조금 지원을 통한 에어컨 보급을 공약했다. 독일 극우 독일대안당(AfD)도 유럽의 에너지 효율등급 정책을 문제 삼으며 에어컨 사용 확대를 주장했다
마르크 베른하르트 AfD 대변인은 "'기후 히스테리'가 에어컨 사용 자제 같은 이념적 건축 규제 오류를 유발해 더 많은 온열 질환 사망자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들이 일제히 올여름 40도 넘는 역대급 더위에 휩싸였지만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이전에는 미국, 아시아에 비해 날씨가 온화했고, 낡은 건물이 많아 건축 규제가 복잡해서다.
폭염으로 인한 개인과 기업의 에어컨 수요가 폭증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에어컨 사용이 지구 온난화의 핵심 원인인 기후 변화를 촉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좌파 성향의 프랑스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절대로 어디에나 에어컨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상황만 더 악화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독일에 산다는 한 네티즌은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에어컨을 설치했으니 놀러 오라는 이웃의 초대를 거절했다며 "이기적인 사람들. 개인의 편안함은 지구를 파괴할 만큼 가치 있지 않다"고 썼다.
해당 게시글에는 2500개 넘는 댓글이 달리며 논쟁이 벌어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전 세계가 유럽연합(EU)을 비웃고 있다", "수천 명이 폭염으로 죽어야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인가?"라고 비꼬았다.
유럽의 사망률 모니터링 기관인 유로모모(EuroMOMO)에 따르면 6월 22일~28일 일주일 사이에만 폭염으로 EU 27개 회원국에서 1만650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중 9000명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자다.
기업들도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일본 의류업체 유니클로는 급기야 폭염 기간 유럽 일부 매장 운영을 중단했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유럽 도시들의 냉방 시스템이 이 정도의 폭염을 고려해 설계되지 않은 탓에 일시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 조성됐다"고 털어놨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유럽의 폭염 대응 투자 대부분은 기계식 냉방보다는 그늘, 단열, 냉방 센터 등 장기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노령자와 환자 등 온열 질환 고위험군 보호를 위한 제한적인 에어컨 사용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z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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