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배제하려던 佛의 'EU 우선주의' 자충수…"세이프 대출 깎여"
유럽 자주국방 대출프로그램 참가 문턱 높인 뒤 'EU 부품 65% 이상' 고집
英업체 비중 높은 공동무기개발 프로젝트 문제돼…佛 신청액서 1.9조 삭감
- 이정환 기자
(서울=뉴스1) 이정환 기자 = 프랑스가 영국을 유럽연합(EU) 국방기금에서 배제하기 위해 까다로운 자격 기준을 내세웠다가, 오히려 자국이 참가한 공동 무기 개발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이 가로막혔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 정부는 1500억 유로(약 262조 5000억 원) 규모의 EU 무기 공동조달 계획인 '세이프'(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 프로그램에 162억 유로(약 28조 3000억 원) 규모의 대출 지원을 신청했다.
그러나 EU 집행위원회는 프랑스와 영국의 공동 무기 개발 프로젝트 일부가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11억 유로(약 1조 9000억 원)가 깎인 151억 유로만 승인했다.
소식통은 부적격 판정을 받은 프로젝트에 프랑스 에어버스, 영국의 BAE 시스템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가 공동 소유한 미사일 제조업체 'MBDA'가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유럽 재무장 계획의 일부인 세이프 프로그램은 회원국이 유럽산 무기를 장기·저금리 대출로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국가들의 방위 능력 확대를 위해 지난해 출범했다.
세이프는 프랑스의 요구에 따라 전체 무기 가치의 65% 이상을 EU 단일 시장 또는 우크라이나에서 조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외 계약업체의 비중은 전체 가치의 35%로 제한된다.
비(非)EU 국가가 세이프에 참가하려면 EU와 안보·국방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세이프에 재정적 기여도 제공해야 한다.
영국은 세이프 참가를 희망해 지난해 EU와 안보·국방 협정을 체결했으나, 프랑스가 집행위원회 측에 형평성 등을 이유로 영국이 약 60억 유로(약 10조 5000억 원) 이상의 재정 기여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결렬됐다.
이에 프랑스가 자국 방위산업 생태계를 보호하려고 영국을 배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문제는 EU의 무기 개발 프로그램 중 다수가 여전히 영국의 기술력에 의존해, 회원국들이 결과적으로 대출 자격을 얻지 못하는 결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투자한 MBDA에도 영국 BAE 시스템스의 지분이 섞여 있어 '기금 가치의 65% 이상이 EU 단일 시장 내 조달'이라는 규정을 충족하지 못했다.
MBDA와 탈레스 등 프랑스 방산기업들은 얽혀 있는 공급망과 핵심 파트너십을 고려해 영국을 포함해 달라고 로비하고 있다.
프랑스 당국은 대출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지만, 자국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유럽이 미국 등 제3국 무기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프랑스 당국자는 "세이프는 유럽 국방 산업을 발전시키고 지원하기 위한 수단이며, 이것이 바로 유럽 우선주의의 핵심"이라고 FT에 전했다.
한편 EU 당국자들에 따르면 헝가리, 이탈리아 등 여러 유럽 국가가 세이프 대출을 자신의 대출 한도보다 적게 신청해, 전체 대출 규모의 12% 수준인 최대 180억 유로(약 27조 원)의 대출 한도가 미사용 상태로 남게 됐다.
한 고위 EU 외교관은 "회원국들의 추가 차입 수요가 그리 많지 않다"며 "국방 분야에서조차 회원국들이 추가로 차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FT에 전했다.
jw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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