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사법개혁 54% 반대로 부결…내년 총선 앞둔 멜로니 '무적 서사'에 균열

'판·검사 분리' 사법체제 개혁안…야권 "사법 장악 시도" 반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벨기에 알덴비센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2.12 ⓒ AFP=뉴스1

(서울=뉴스1) 이정환 기자 =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제안한 사법 개혁안이 23일(현지시간)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AFP통신, 프랑스 르몽드,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멜로니 총리가 제안한 사법 체제 개혁안은 전날에 이어 이틀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개표율 90% 기준 반대 약 54%를 기록하며 찬성 46%를 앞섰다.

멜로니 총리는 부결 결과가 발표되자 "이탈리아를 현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면서도 "이탈리아 국민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이번 개혁안은 모든 판·검사의 임명·전보·승진을 담당하는 기구인 최고사법위원회(CSM)를 판사 위원회와 검사 위원회로 이원화하고, 총 15명으로 구성된 새로운 징계위원회를 신설하고자 했다.

또 개혁안은 판사와 검사 간의 직무 전환을 차단해 역할을 분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의회는 지난해 10월 개혁안을 승인했지만, 국민투표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우파 성향의 멜로니 총리는 사법 체계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번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멜로니 총리는 지난 12일 "반대표가 승리할 경우 성폭행범과 아동 성추행범들이 석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를로 노르디오 법무장관은 이번 개혁안이 사법부 내 작동하는 '준마피아적 메커니즘'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반면 야권은 CSM을 분열시키면 구성원들이 정치적 압력에 더욱 취약해질 것이라며 멜로니 총리의 개혁안을 '법관 장악 시도'라고 규정했다. 그간 이탈리아 우파 정치인들이 판사들의 '좌편향적 판결'을 비판하며 그 원인을 현행 사법 체계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개혁안을 둘러싼 정치 갈등이 격화하면서 국민투표는 사실상 멜로니 총리에 대한 신임 투표 성격이 짙어졌다. 이탈리아 내무부 자료에 따르면 투표율은 역대 최고치인 58.5%를 기록해 투표율이 낮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었다.

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의 주세페 콘테 대표는 개표 결과 발표 직후 "우리가 해냈다! 헌법 만세!"라고 부결을 축하했다.

이번 국민투표 패배로 지난 2022년 이후 안정적 리더십 이미지를 구축해 온 멜로니 총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큰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

다니엘레 알베르타지 영국 서레이대 정치학치학 교수는 "매우 나쁜 결과다. 정권 프로그램의 핵심이자 지난 30년간 우파가 내세운 상징적 제안 중 하나에 대해 유권자의 지지를 잃었음을 의미한다"며 "멜로니의 무적 이미지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됐다"고 AFP통신에 전했다.

jw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