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경제, 우크라戰에 '악화일로'…"내년 금융위기 직면할 수도"
서방 제재에 석유·가스 수출 급감…12월 수익 전년비 49%↓
16% 고금리에 기업 부담 가중…부실 채권 비중 증가
- 이창규 기자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4년이 다가오면서 러시아 경제가 어느 때보다 취약한 상태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22일(현지시간) 분석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신규 제재와 고금리·물가상승 등으로 인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10월 러시아의 대형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트와 루코일 등을 추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은 러시아 예산의 핵심이다. 그러나 전쟁을 지속하면서 군사비 지출은 증가하는 반면 서방 국가들의 제재로 인해 예산 압박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랄 원유는 현재 배럴당 35달러에 판매되고 있는데 이는 2025년 예산을 편성할 당시 상정했던 배럴당 69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또한 러시아의 올해 1~3분기 군사비 지출은 149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로이터 통신은 신규 제재와 유가 하락으로 인해 러시아의 12월 석유 및 가스 수출로 인한 수익이 전년 대비 49%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버드대 데이비스 러시아·유라시아 연구센터의 크레이그 케네디 연구원은 "석유의 시추 및 생산 산업이 위기에 빠지고 있으며 최근 제재는 이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제재 대상인 석유를 구매하려는 이들은 한정되어 있다"며 "현재 팔리지 않은 많은 양의 석유가 유조선에 실린 채 바다 위에 저장되어 있다. 하루 160만~280만 배럴이 수요 없이 갈 곳을 잃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케네디는 "신규 제재는 더 많은 문제를 예고하는 공격적인 조치"라며 "러시아 국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거나 늘어나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빌릴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협상력을 강화할지 약화할지 자문해 봐야 한다. 분명 러시아를 더 약해 보이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군사비 지출과 기업 대출 장려, 제재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높인 고금리도 러시아 경제에 상당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WP는 분석했다.
러시아는 한때 금리를 21%까지 높였다. 현재는 16%로 낮췄으나 여전히 기업들의 이익과 현금 보유액을 잠식하면서 기업들의 투자 중단 및 생산 급감으로 이어지고 있고, 대금 미지급 사례도 급증했다.
중앙은행 공식 자료에 따르면, 기업 대출 부문의 부실 채권 비중은 5% 미만으로 위기로 이어질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자료는 규제가 완화된 군수 산업에 대한 대출은 포함되지 않았다. 오히려 중앙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방위 산업에 대한 대출은 2020억 달러를 넘으며 이는 전체 기업 대출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인 가즈프롬은 전쟁 발발 후 주요 시장인 유럽을 잃으면서 지난해 129억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또한 지난 2022년 초 270억 달러에 달했던 현금 보유액은 현재 60억~80억 달러 수준으로 줄었고, 200억 달러 이상의 부채가 쌓인 것으로 파악된다. 로스네프트도 올해 1~3분기 순이익이 전년대비 70% 급감해 36억 달러에 그쳤다.
러시아 거시경제분석 및 단기예측센터는 공식 자료에 근거해 부실 대출이 계속 늘고 예금자들이 대거 자금을 인출하기 시작할 경우 러시아는 내년 10월까지 시스템적 은행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 국제안보연구소의 경제 전문가인 야니스 클루게는 러시아 경제에 대해 "글로벌 원자재 가격의 고공 행진과 (정부) 지출 주도형 호황과 같은 많은 긍정적 요인들로부터 혜택을 받았으나 이제 이러한 요인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러시아는 전쟁 후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가 고금리를 통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있지만 이미 러시아 국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다.
러시아 최대은행 스베르방크에 따르면, 이달 초 의류비 지출은 전년대비 8.7%, 가계 용품 지출은 전년대비 8.8%, 건강 및 미용 지출은 전년대비 5.9% 감소했다.
또한 많은 기업들이 고금리와 수익 감소로 인해 휴직, 근무시간 단축, 임금 체불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임금 체불 총액은 전년대비 약 3배 증가해 2700만 달러를 넘었다.
세계 최대 탄광지역인 쿠즈바스에선 151개 탄광 기업 중 18개 기업이 운영을 중단했고, 30개 기업은 현재 위태로운 상태다.
전직 러시아 중앙은행 관리인 알렉산드라 프로코펜코는 "러시아의 경제가 얼어붙어 있으며 근본적으로 지속 불가능해 보인다"며 "(러시아 경제는) 엔진이 과열된 채 중립 기어에서 공회전 하는 자동차와 같다. 차는 앞뒤로 움직이지 않지만 오래 앉아 있을수록 보닛 아래에서는 더 많은 손상이 쌓인다"고 말했다.
고위 외교관들과 가까운 한 러시아 학자는 "경제 문제가 악화된다고 해서 사회적·정치적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내년은 군사 작전이 시작된 후 첫 번째로 어려운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yellowapoll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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