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사면초가 젤렌스키, 트럼프 종전안 앞에서 진퇴양난
美, '영토 포기' 담은 28개조 평화안 최후통첩…27일까지 수용 압박
외교 위기가 국내 지지 결집시켜…'부패 해결'이 최종 시험대
-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혹독한 시험대에 섰다. 미국이 28개 조항의 평화안을 제시하면서 27일까지 수용 여부를 결정하라는 최후 통첩을 받으면서다.
미국은 이 평화안에 서명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및 정보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의 계속적인 지원과 영토 포기 중에 선택을 강요받고 있으며, 최측근이 연루된 대형 부패 스캔들로 국내 정치 기반마저 흔들리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평화안은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고, 군 규모를 88만 명에서 60만 명으로 축소하며, 헌법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포기를 명시하는 등 사실상 러시아 측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조항들이 담겨 있다.
이 문서는 친러시아 성향인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특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키릴 드미트리예프 경제특사가 공동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러시아어로 작성된 초안이 영어로 번역됐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미국의 일방적인 평화안 추진에 유럽 동맹국들은 즉각 공동 대응에 나섰다. 유럽연합(EU) 유럽연합(EU)과 영국·캐나다·일본 등 11개국 지도자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해당 평화안에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특히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제한은 주권 침해이며 국경선 변경이 무력으로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럽 측은 평화안의 독소 조항을 제거하고 현재 전선을 협상 기준으로 삼는 수정안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미국과 우크라이나 측에 전달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거대한 외교적 위기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정치적 숨통을 틔워줬다.
평화안이 공개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는 최측근이자 옛 사업 파트너인 티무르 민디치가 연루된 1억 달러(약 1400억 원) 규모의 에너지 부문 부패 스캔들로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미국 측 평화안이 공개되자 국내의 부패 논란은 순식간의 '국가 존립의 문제' 뒤로 밀려났다. 젤렌스키는 법무부 장관과 에너지부 장관을 경질하고 최측근인 민디치까지 제재 명단에 올리며 부패 척결 의지를 보였다.
젤렌스키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항전 의지를 다졌던 키이우의 한 거리에서 "국민 모두가 단결해야 한다"는 영상 메시지를 내보내며 국민적 단결을 호소했다.
동시에 유럽 각국 정상들과의 연쇄 통화를 통해 미국의 압박에 맞설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부패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젤렌스키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이유는 그가 항복에 맞설 유일한 지도자라는 인식 때문이다.
정책 분석가 빅토르 슐린차크는 NYT 인터뷰에서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제안한 항복 문서에 서명할 수 없다는 다수의 신념을 구현하는 유일한 공식 대표자"라며 "우리에게 다른 합법적인 지도자는 없으며 그 때문에 대안도 없다"고 말했다.
현재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미국과 우크라이나, 유럽 대표단이 참여하는 다자 협상이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평화안이 "최종 제안은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섰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우리 노력에 전혀 감사를 표하지 않는다"며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국의 압박을 이겨내더라도 부패 문제라는 근본적인 숙제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정치범으로 구금된 우크라이나 국영에너지기업의 전 수장 볼로디미르 쿠드리츠키는 "존엄과 자유에 대해 유창하게 연설하는 영상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우리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부패 문제에 구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past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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