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美·러 우크라 종전안, 결국 푸틴에 다 내주나

28개 조항 평화 계획에 '제2의 뮌헨 협정' 비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월 18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회담하고 있다. 2025.8.18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러시아와 합의한 종전 계획을 놓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요구를 다 들어준 사실상의 불평등 조약을 우크라이나가 강요받게 될 거란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10월 말 비밀리 접촉해 28개 조항의 포괄적 우크라이나 평화 계획을 도출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당사국임에도 협의 과정에서 배제됐고 20일(현지시간)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합의안을 전달받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해당 합의에 대한 '성급한 성명'을 발표하지 않겠다며 "우크라이나는 평화가 필요하다. 세상 누구도 우리가 외교를 저해한다고 말할 수 없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선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맥시멀리스트'(Maximalist·최대한의 요구)에 응하고 말았다는 개탄이 들린다.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기세 약화와 젤렌스키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을 이용해 최대 요구 조건을 더욱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한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소식통은 합의안에 대해 "전혀 내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2025.10.10.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현재까지 공개된 미·러 합의안을 보면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안전보장을 대가로 동부 돈바스를 러시아에 완전히 넘겨야 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배제, 병력 감축, 핵심 무기 포기, 100일 내 선거 실시도 감수해야 한다.

러시아는 영유권을 주장하던 우크라이나 친러 지역을 뜻대로 손에 넣는다. 서방의 경제 제재 해제와 주요 8개국(G8) 복귀로 국제 경제 통합을 재개한다. 다시는 우크라이나 및 인접 유럽국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대가다.

미국의 돈 베이컨 공화당 하원의원은 이 같은 계획에 대해 "1938년 뮌헨"이라고 소셜미디어 엑스(X)에 썼다. 유럽 열강들은 2차 세계대전 직전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전 독일 총통을 달랠 '유화책'으로 뮌헨 협정을 체결했다.

히틀러는 독일계가 대다수인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을 차지하는 대신 더 이상의 영토 야욕을 품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합의는 무참히 깨졌고 체코슬로바키아 해제와 2차 대전 발발을 초래했다.

마이클 클라에손 스웨덴 참모총장은 "러시아가 조만간 나토의 집단방위 조약 5조를 시험하려 들 것이라 확신한다"며 발트해 3개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을 비롯한 유럽 어디든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뿐만 아니라 과거 체첸 전쟁(1994~1996년 1999~2009년), 조지아 전쟁(2008년), 크림반도 합병(2014년)에서도 원하는 게 생기면 전략적 위험을 무릅써 왔다고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5.10.17 ⓒ AFP=뉴스1 ⓒ News1 이지예 객원기자

미·러 합의안에는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보장한다△ 우크라이나는 신뢰할 만한 안전 보장을 받는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평화 위원회가 협정 이행을 감독하고 보장하며 위반 시 제재한다 등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에서도 미국, 러시아, 영국 등 열강들과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안보를 보장받는다는 각서에 서명한 바 있다. 러시아는 2014년 보란 듯이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뒤 2022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고 서방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우크라이나 휴전 논의에 적극 관여해 온 유럽 주요국들과 유럽연합(EU)은 미·러 합의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고 부랴부랴 "우크라이나인들과 유럽인들의 지지가 필수"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 의회 외교위원장인 올렉산드르 메레즈코는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없이는 우크라이나에 관한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계속 존중하길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ez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