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점령지 재개발해 자국민 분양…우크라인 '무주택자’ 전락
마리우폴 상징 '클락하우스' 주민들, 재개발 과정서 집·권리 뺏겨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파괴된 건물을 재개발하면서 원래 주인이던 우크라이나인들을 배제한 채 러시아인에게 분양하며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다. 집을 뺏기는 줄도 모르는 채 재산이 넘어가 버린 우크라이나인들은 소송에서도 지고, 러시아 대통령에게 처지를 호소했지만, 아무 응답도 얻지 못했다.
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마리우폴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던 클락하우스는, 부서진 건물을 건설사가 재개발하면서 원주인을 쫓아내고 러시아인에게 성공적으로 판매한 사례에 해당한다.
클락하우스는 전쟁을 피해 주인인 우크라이나인들이 도망치거나 입국 길이 막혀 돌아오지 못한 것일 뿐인데 당국은 이 아파트를 '소유주 없음'으로 지정해 압류했다. 반면 러시아에서 이주한 신입 주민들은 신규 개발 건물에 대해 2%의 낮은 주택담보 대출 금리 등 다양한 혜택을 누렸다.
클락하우스가 결국 러시아인들 손에 넘어간 것은 몇단계에 걸쳐 이뤄졌다.
클락하우스는 1950년대에 지어져 마리우폴에서 가장 선호되던 거주지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이 지역의 다른 주민처럼 고통 속에서 살게 됐다. 러시아군의 포위 속에서 클락하우스 주민들은 건물 지하실에 숨었다. 2022년 3월에는 미사일이 클락하우스를 강타해 여러 명이 사망했다. 주민들은 버티지 못하고 대규모로 도시에서 탈출했고 이때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도망친 주민들로부터 헐값에 재산을 사들였다.
클락하우스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유럽 각지로 흩어졌지만, 일부는 여름철 누수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지하실에서 남아 있었다. 비록 포탄으로 피해를 보아 누수까지 발생했지만, 주민들은 건물의 역사적 가치로 인해 보존될 것이라 기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2년에 승인한 마리우폴 재개발 마스터플랜에는 클락하우스가 복원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2022년 말, 불도저가 도착했고 주민들은 철거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건물 대부분은 2023년 초까지 철거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에도 주민들은 새 건물에서 아파트를 우선하여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2022년 제정된 법령에 따르면, 이들은 과거 거주지 부지에서 재이주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 법에 따른 절차와 내용을 잘 알지 못해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해당 부지는 러시아 건설부 산하 로스캅스트로이라는 회사의 자회사에 의해 재개발 대상으로 지정된 후 일반인에게 분양됐다.
뒤늦게 주민들은 개발사인 RKS 디벨롭먼트 측에 사정을 호소했으나 회사는 "거기 계속 살고 싶었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계약금을 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기존 주민들은 아파트에 대해 보상금을 받기는 했지만, 이를 재이주권과 별도로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재이주권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계약금을 내야 하는 것인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제시받은 보상 금액 자체도 실제 분양가보다 약 세 배나 낮았다. 한 주민은 "그 돈으로는 묘지도 못 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일부는 보상금조차 수령하지 못했다. 보상금을 청구하기 위해 마리우폴로 돌아가려 했지만, 입국을 거절당한 사례도 있었는데 주민들은 러시아 당국이 재산 청구권을 가진 사람들의 귀환을 막고 있다고 추측했다.
설령 감당할 여력이 있었더라도, 많은 기존 주민은 원칙적으로 비싼 분양권을 사는 것에 반대했다. 왜 자신들이 마리우폴 파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아파트는 모두 분양 완료됐다. 한 중개인은 구매자 대부분이 러시아 출신이라고 말했다. 개발사가 공개한 사업 보고서에는 약 8억5000만 러시아 루블(약 147억 원) 규모의 건설 비용 대부분이 미래의 소유주들에 의해 충당됐다고 나와 있다.
건설이 시작되면서야 주민들은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러시아가 세운 정부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공식 기관에 호소하며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당국은 법이 변경됐다면서 더 이상 이전 주택 부지에 대한 권리가 없다고 했다.
주민들은 마지막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은 러시아 시민으로 새로 등록된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했으며, 푸틴에게 보내는 서한도 작성해 호소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지난해 말 법원은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WSJ은 전했다.
ky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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