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천 아래 작은 발, 잔해 밑 하얀 손…지진은 이런 비극 남겼다

탯줄 못끊고 발견된 아기, 고모집에 입양돼 감동 안겨
튀르키예·시리아 강진 사망자 총 5만명 넘어서

지난 7일 한 시리아 진데리스에서 한 남성이 침통한 얼굴로 분홍색 천에 싼 아이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발바닥에 흙이 묻은 오통통한 아이의 발이 천 아래 삐져나와 있다.ⓒ AFP=뉴스1

(서울=뉴스1) 이유진 기자 =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지진이 강타한지 약 20일 동안 수많은 기사와 사진이 참상을 전했다. 무너진 건물의 집채만한 잔해 사이로 빠져나온 숨진 딸의 손을 멍하니 붙잡고 있던 아버지의 사진만큼 더 잘 전 세계에 지진의 비극을 알린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후 잔해를 헤쳐 찾아낸 사그라진 작은 생명들을 천에 싸 안은 침통한 아버지의 사진들도 가슴을 울렸다. 간혹 기적처럼 생존자들을 찾을 때, 고양이나 강아지 등의 생명을 살렸을 때 구조대나 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지만 5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기록 대부분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7일 (현지시간) 강진이 강타한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에서 아버지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숨진 15세 딸의 손을 꼭 잡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26일(현지시간) AFP통신과 미 CNN 등은 강진으로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사이로 빠져나온 딸의 손을 잡은 채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아버지 메수트 한제르(49)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제빵사로 일하던 한제르는 규모 7.8의 강진이 지난 6일 새벽 튀르키예 남동부 카흐라만마라슈를 강타했을 당시 일터에 나와 있었다.

땅이 거칠게 흔들리고 곳곳에서 건물이 무너지자 그는 즉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자택이 1층이었던 덕분에 아내와 성인이 된 세 자녀는 다행히 무사했지만 이스탄불과 하타이에 사는 사촌들이 온다는 소식에 할머니 댁을 방문했던 15살 막내딸 이르마크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제르는 연락이 닿지 않자 할머니 댁이 있던 곳으로 달려갔고 8층 건물이 무너진 잔해 속에서 딸의 시신을 발견했다.

구조대는 언제 올지도 몰랐고 딸은 집채만한 잔해에 깔려서 살 가능성이 없었다. 한제르는 "딸이 침대에서 천사처럼 잠들어 있었다"며 "딸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곁에 머물러 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그는 "딸의 손을 잡고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양 볼에 입을 맞췄다"고 당시를 되새겼다.

그러던 중 현장에 도착한 AFP 기자 아뎀 알탄에게 사진 촬영을 허락하면서 튀르키예 참상을 알리는 그의 사진이 빛을 보게 됐다.

지진이 강타한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의 한 아파트 근처 나무에 15일(현지시간) 그 곳에 살던 두 소년의 사진이 붙어 있다. 잔해 속 소년들을 찾기 쉽도록 누군가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인다. 지진 생존자인 한 남성은 "이들의 부모님은 죽었으며 시신이 아직 잔해 밑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잔해 아래에는 10구의 시신이 있는 것 같다면서 소년들이 그들 중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영미 기자

지난 15일 카라만마라슈의 한 아파트 근처 나무엔 해당 지역에 살던 두 소년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빠른 구조를 위해 누군가 붙여 놓은 것으로 보였지만 이들의 부모는 이미 사망했으며 잔해 아래에는 소년들을 포함해 10구의 시신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을 강타한 이번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총 5만여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은 사망자수가 4만4218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시리아 측이 최근 발표한 사망자수는 5914명으로, 두 국가의 사망자수를 합하면 5만132명에 이른다. 또 튀르키예에선 약 10만6000여채의 건물이 무너지거나 파괴된 것으로 파악됐다.

규모 7.8 강진이 발생한 지 사흘째인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에서 무라드 무히딘이 무너진 건물에 깔려 목숨을 잃은 자신의 두 살배기 아이를 품에 안고 있다. 2023.2.8.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하지만 비극 속 한 순간 기쁜 소식도 있었다. 지난 6일 시리아 북부 진데리스의 5층 주택 잔해더미에서 숨진 엄마와 탯줄로 이어진 채 구조된 아기는 18일 건강하게 퇴원해 고모집으로 입양됐다.

신의 계시를 뜻하는 ‘아야’(Aya)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아기는 숨진 엄마의 이름을 물려 받아 ‘아프라’라는 이름으로 고모 가족네로 입양됐다.

시리아 진데리스의 잔해에서 주민들이 부상당한 한 남성을 힘겹게 구조하고 있다.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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