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분된 터키 사회와 한국의 보혁 갈등

[최종일의 세상곰파기]
케말리즘에 승리한 에르도안?…혼란의 불씨 남겨

터키에서 16일(현지시간) 개헌안이 통과됨에 따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한이 대폭 강화됐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터키는 이슬람과 민주주의가 결혼한 형태다. 세속주의(정교분리)는 그 자식이다. 지금 이 아이가 때때로 아프다. 터키군은 아이를 살리는 의사이다. 아이가 어떻게 아픈가에 따라 우리는 필요한 처방을 내릴 것이다"

지난 1997년 세빅 비르 터키군 장군이 이슬람계 복지당 소속의 네즈메틴 에르바칸 당시 총리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다. 이 편지를 받은 뒤 복지당 연합정부는 붕괴됐고, 복지당은 헌법재판소로부터 해산 결정을 받았다. 터키 언론은 이 일을 '편지 쿠데타'라고 부른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가 1923년 터키 공화국을 세울 때 내세웠던 세속주의를 강하게 수호해온 군(軍)의 터키 내 위상을 보여주는 일화다. 과거 집권 세력이 이슬람에 치우칠 때마다 군은 쿠데타로 균형추를 돌렸다.

쿠데타가 수차례 발생했다는 것은 그만큼 터키인들의 생활에서 이슬람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타튀크르가 추진한 칼리프제 폐지, 정교분리, 남녀평등교육, 일부다처제 폐지, 여성의 선거권, 아랍문자 폐지와 라틴 알파벳 사용 등의 개혁에 도시 엘리트층은 박수를 보냈지만 보수 세력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를 완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997년 쿠데타 이후 터키 사회 내에서 이슬람 운동은 일시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복지당은 미덕당으로 재창당됐고, 종교적 자유를 추구하고 세속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은 이후 다시 활기를 찾았다. 이 시기에 주목받기 시작한 이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당시 이스탄불 시장이다.

젊은 시절 이스탄불 교통국에서 일할 때 군 출신의 국장으로부터 콧수염을 밀라는 지시를 받자 이를 거부하고 사직하기도 했던 에르도안은 1999년 보수 성향이 강한 동부 시르트에서 이슬람주의를 주창하는 시를 낭송하다가 4개월 옥살이를 했다. 석방 뒤 일약 중앙 정치 무대의 거물이 됐다.

에르도안은 이 기세로 2001년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했고 이후 세 차례 총선 승리를 거두면서 2003~2014년에 총리를 지냈다. 4연임을 제한한 당규에 막히자 대통령으로 시선을 돌렸고 2014년 첫 직선제 대통령이 됐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권한이 제한돼 있지만 그는 국내외 비판에도 실질적인 국가수반 역할을 해왔다.

터키에서 개헌안 국민투표가 치러진 16일(현지시간) 반대 지지 시민들이 집회를 벌였다. ⓒ AFP=뉴스1

강력한 카리스마와 정치적 통찰력 등 개인적 자질은 이슬람 색채가 강한 정책과 맞물려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냈다(정치인으로서 총 12차례 선거 혹은 국민투표에 관여했는데 모두 승리했다). 재임 기간, 그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대형 모스크(이슬람사원)를 지었다. 또 주류세를 인상했고 레스토랑과 바에서 주류 판매를 제한했다. 대학과 법원, 의회에서 히잡(이슬람식 두건) 착용 금지 규제도 풀었다.

대통령에 오른 뒤에는 터키를 대통령제 국가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세속주의 파수꾼인 군은 지난해 7월 또 다시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이번엔 무위에 그쳤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후 쿠데타 가담 세력을 축출한다는 명분으로 대대적 '사회 정화' 운동을 벌였다. 4만7000명을 체포했고, 12만명에 대해 면직 혹은 정적 처분을 내렸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강권통치가 더욱 노골화된 상황에서 16일(현지시간) 치른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은 개헌 찬성을 선택했다. 찬성 51.4%, 반대 48.6%였다. 어느 쪽이 이겼다기보다는 여론이 양분화돼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 싶다.

여하튼 개헌에 따라 국가의 거의 모든 정치 수단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수중에 들어갔다. 의회가 거의 뒤집을 수 없는 대통령령을 발동할 수 있게 됐고, 대통령을 견제하는 법관과 정부 관리 다수에 대해 의회 동의없이 임면권을 갖게 됐다.

비영리기관 중동민주화프로젝트(POMED)의 터키 전문가 하워드 에이센스타트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한은 대폭적으로 확대됐고 터키 정치에서 견제와 균형 장치는 치명타를 입게 됐다"며 터키가 독재정치로 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집중화된 권력이 국가에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지지자들의 바람과 달리 더욱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지난 10여년 간 에르도안의 통치 스타일은 화합보다는 상대를 벼랑 끝으로 모는 방식으로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었다.

특히, 국가비상사태가 유효하다보니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리한 고지에서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초박빙 승부였다. 현대 터키 정치를 설명하는 종교근본주의와 세속주의 간 긴장 관계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한국사회에서의 보혁 갈등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강압적, 권위적 통치 스타일을 감안할 때 더 큰 갈등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과거 이란식 이슬람혁명을 추진할 가능성은 적지만 케말리즘(Kemalism·아타튀르크가 규정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개혁)을 일방적으로, 근본적으로 훼손하려 들면 도시민들과 엘리트 계층의 더욱 거센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앞서 2013년 5~6월에 에르도안 당시 총리 반대 시위가 터키 전역에서 벌어졌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총 8명이 사망했다. 당국이 이스탄불에 있는 탁심 게지 공원에 1940년 철거된 오스만제국의 병영을 세우려고 했고, 이에 생태주의자들이 시작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또 쿠르드 반군 세력과의 충돌이 격화될 수도 있다. '터키판 푸틴'이나 '히틀러'라는 별명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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