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민족' 타타르족, 슬픈 역사 재현되나?
70년전 나치공조 이유로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러시아의 크림합병으로 러시아계-타타르족 간 갈등 심화
- 이준규 기자
(서울=뉴스1) 이준규 기자 = 크림자치공화국 심페로폴의 대학교에서 모국어인 타타르어를 가르치는 밀랴라 세타로바는 얼마 전부터 27년 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곤 한다.
24살의 젊은이였던 그는 당시 쇠약해져가던 구소련 정부에 중앙아시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동족 크림 타타르족의 귀향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곤 했다.
결국 구소련은 붕괴됐고 많은 타타르인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51세가 된 세타로바는 다시 한 번 러시아를 향해 목소리를 낼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가 크림 타타르족의 근거지인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을 합병했기 때문이다.
세타로바는 AFP통신에 "러시아를 믿지 않는다"며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공화국이 이전보다 더 많은 권리를 주민들에게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크림공화국은 지난달 16일 주민투표를 통해 97%에 가까운 찬성률로 러시아로의 합병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 안에는 주민투표 집단 보이코트를 결정한 30만명에 달하는 타타르인의 표는 포함돼 있지 않다.
터키어를 사용하는 무슬림인 타타르족의 이 같은 움직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와의 악연에서 비롯된다.
1944년 5월 크림반도에 거주하던 타타르인들에게 느닷없이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로의 이주명령이 내려졌다.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타타르인의 상당수가 소련군에 가담했음에도 독일 나치를 도왔다는 이유로 종족 전체를 강제 이주시켰다.
1991년 우크라이나의 독립 이후 귀향길이 열렸지만 변변한 가재도 챙기지 못한 채 이주길에 올랐던 20만명 중 절반은 이미 황량한 동토에서 굶주림과 질병에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러시아의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크림반도는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현재 크림공화국의 인구는 약 200만명. 이 중 타타르족의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친 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친 유럽 성향의 야권에 밀려 지난 2월 22일 러시아로 도피했을 때만 해도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단 3주 만에 사라졌다. 크림 인구의 77%에 달하는 러시아계 주민의 거침없이 러시아로의 합병 결정을 내렸다.
합병을 승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어와 함께 타타르어도 크림의 공식언어로 지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러시아는 이미 곳곳에서 소수민족 정체성 약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타타르족의 종교가 최근 일어난 각종 테러의 온상이자 과거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던 체첸과 같은 이슬람교인 점도 불안 요소 중 하나이다.
타타르족과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 간의 갈등은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주민투표가 열린 16일에는 벨로고르스크에서 타타르족 인권운동가 레샤트 아메토프의 시신이 발견됐다. 수일 전 러시아계 무장세력에 납치됐던 그의 몸에는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주민 투표에 앞서서는 친 러시아 시위대와 반 러시아 시위대 간의 폭력사태도 수차례 발생했다.
타타르족의 정신적인 지도자이자 우크라이나 의원인 무스타파 제밀레프는 지난 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수일 내에 크림반도에서 타타르족과 우크라이나인 간의 유혈 인종갈등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며 타타르족의 우려가 심각함을 강조했다.
유엔 난민기구에 따르면 이미 타타르족 5000명 이상은 크림반도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타타르족 정치단체인 메즐리스는 이 같은 우려 속에 러시아로 합병된 크림자치정부에 협력할 뜻을 밝히면서도 한편으론 더 많은 자치권 확보를 위한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주민 자체적인 차원에서도 타타르족 무장단체들은 항전의 뜻을 밝힌 바 있으며 타타르족의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반정부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구소련에 의해 강제 이주 당한지 정확히 70년 만에 다시 일어난 러시아의 크림 장악이 또 한 번 타타르족과 러시아의 악연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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