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 대처 前총리의 말말말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타계가 보도된 후 대처 前 영국총리 자택앞에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초상화와 꽃 ©로이터= News1

지난 8일(현지시간) 향년 87세로 사망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철의 여인"으로 영국을 호령한 그녀에게는 명성만큼이나 유명한 말들이 따라다닌다. 다음은 생전에 대처 전 총리가 한 말들이다.

"정치에서 무엇인가 말해야 한다면 남자에게 요구해라. 무엇인가 이루고 싶다면 여성에게 요구해라."(1965년 여성단체 연설에서)

"내 생전에 여성 총리가 나올것 같지 않다". (1973년 교육장관 시절. 대처는 1979년 최초의 여성 영국 총리로 선출되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한 말을 기억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 매우 적절한 말 같다. '다툼이 있는 곳에 화합을, 과오가 있는 곳에 진실을,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는 희망을 가져올 지어다.'" (1979년,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서 관저에 도착한 직후)

"나는 여론수렴형 정치가가 아니다. 나는 신념형 정치가다." (1979년)

"우리 영국은 유럽경제공동체(EEC)의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EEC에 낸 막대한 돈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1979년 EEC 정상회담에서)

"나는 장관들이 내가 말한 것을 실행하는 한 얼마나 말을 많이 하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1980년)

"지금 언론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인 'U턴, 정책방향을 전환하라'가 내입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해줄 말은 '돌아가려면 당신이나 돌아가세요, 저는 안돌아갑니다'이다."(1980년 보수당 컨퍼런스에서 대처 총리의 경제정책 때문에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정책을 완화해야한다는 동료들에게)

"포클랜드섬 주민들은 영국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영국적인 삶의 방식을 갖고 있으며 왕실에 충성한다. 숫자는 적을 지라도 평화 속에 살며 자신들의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충성할 대상을 결정할 권한이 있다. 이같은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영국인들의 소망이자 왕실 정부의 의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바람이며 열성이자 모든 의원들의 결의가 담긴 것이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을 선언하며)

"충격적이지만 우리는 차분하고 단호하다. 우리가 지금 여기 모였다는 사실은 북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이번 공격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모든 시도들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1984년, IRA 폭탄 테러로 내각 의원들이 사망하자)

"우리는 항상 내부의 적을 경계해야 한다. 내부의 적은 싸우기도 더 어렵고 자유에도 더 위험한 존재다." (대처 총리의 경제정책에 반대한 1984-85년 광산 파업에 대해)

"그들은 우리의 문제들을 사회의 책임으로 돌려버리지만 누가 사회인가? 말도 안되는 논리다! 남자와 여자가 있고 가정이 있고 그 다음에 정부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과 자신을 보는 시각이 먼저 바뀌지 않으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자신을 돌보고 그 다음 우리 이웃을 도와주는 것은 우리의 임무다".(우먼스 오운(Woman's Own) 잡지 회견에서)

"이제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1989년 첫 손주가 태어난 날)

"노, 노, 노(No, no, no)" (1990년, 유럽 단일 통화 반대 연설에서)

"나는 이기기 위해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 (1990년 11월 총선에서 진 후)

"이곳(정치판)은 재미있는 낡은 세계" (1990년 정계은퇴 결정에 대해)

"로널드와 나는 둘다 야당에 있을 때 서로를 알게 됐다. 꽤 많은 이들이 우리를 야당에 머물게 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실패했다. 보수당이 집권한 1980년대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우리는 여전히 반감을 사고 있다. 우리는 결코 기득권층인 적이 없다. 언젠가 로널드가 말한 것처럼 영어에서 가장 위험한 말 중 하나는 '나는 정부에서 나왔다. 당신을 돕기 위해 여기 왔다'라는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가 옳았다." (2002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추모하며)

ungaunga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