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에 담긴 동남아의 시간: 니빠 잎에서 전자담배까지[동남아시아 TODAY]

최기룡 서강대 동아연구소 연구원

편집자주 ...한국에서 '가성비 관광지'와 '저임금 생산기지'로만 여겨지던 동남아시아가 뜨고 있습니다. 높은 잠재력의 소비시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미중 패권 경쟁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동남아를 모릅니다. 더욱 가깝게 지내야 하는 이웃인 동남아의 정치, 경제, 문화를 서강대 동아연구소 필자들이 격주로 소개합니다.

최기룡 서강대 동아연구소 연구원
말레이시아 캄풍바루에서 만난 로꼭 다운 니빠(Rokok Daun Nipah)

쿠알라룸푸르 도심 한복판, 100년 넘게 말레이인의 터전으로 남아있는 '캄풍바루'(Kampung Baru)에 머물며 마을 현지인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나누곤 했다. 이 골목 저 골목의 현지인 맛집을 돌며 나시르막부터 로띠 차나이 등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꺼낸 담배가 있었는데 내가 알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종이에 말린 필터가 달린 담배가 아니라 야자나무 잎 같은 것으로 말아서 피우는 담배, '로꼭 다운 니빠'였다. 코로나19를 앓은 뒤로 궐련형 담배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기 시작하면서, 말레이시아 전통 방식으로 직접 담배를 말아서 피우고 있다고 했다.

필터도 없이 잎을 그대로 말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라 무척 흥미로웠다. 문득 우리나라에서 어르신들이 곰방대에 담배를 채워 넣고 피우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종이도, 필터도 없이 손으로 직접 담뱃잎을 다루는 모습은 다르지만 닮은 구석이 있었다. 흡연자도 아니고 그동안 동남아시아의 담배 문화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던 나에게는 정말 신선하고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사실 이 담배라는 기호품 자체는 동남아 토착의 산물은 아니다. 알려진 대로 담배는 스페인의 식민지 확장과 무역망을 통해 필리핀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에 들어온 외래 작물이다. 담배가 들어오기 전 말레이시아의 경우 손님을 맞이하던 기호품은 빈랑(pinang) 열매를 시레 잎(daun sirih)에 싸서 씹는 '시레-피낭'(sirih-pinang) 문화였다. 미얀마에서는 나무껍질과 타나펫(thanatphet) 나뭇잎으로 만든 시가 형태의 체루트(cheroot)를 피우는 문화가 있었다. 새로 들어온 담배는 이 오래된 문화를 빠르게 바꿔 나갔다.

세계 최대 담배 격전지, 동남아
인도네시아 아체주 몬타시크에서 한 담배 제조업자가 직접 만든 담배를 피는 모습. 2026.02.03 ⓒ AFP=뉴스1

동남아시아에도 많은 애연가가 분포하고 있다. 담배 전문 리서치 매체 '토바코 인사이더'(Tobacco Insider)가 올해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에는 중국을 제외한 세계 최대 담배 시장인 인도네시아가 자리하고 있으며,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등이 세계 20대 담배 시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세계 최대 담배회사로 알려진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이 2024년 한해 인도네시아에서만 약 800억 개비 이상의 담배를 판매했는데, 이는 전체 판매량의 11.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시장 규모 역시 상당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포츈비즈니스인사이츠'(Fortune Business Insights)가 2026년 8월 제공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담배 시장 규모는 2025년 기준 1조 582억 달러였으며, 이 중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우 5197억 달러로 전체의 약 49%를 차지한다. 물론 이 수치에 중국, 인도 등이 포함되어 동남아시아만을 따로 떼어 내긴 어려우나, 보고서는 이 비중에서 상당한 부분이 동남아시아에서 향이 첨가된 전자 담배가 인기를 얻으면서 얻어진 결과라고 설명한다.

서구에서 흡연이 줄어드는 동안 동남아시아는 다국적 담배 기업에 손실을 메우는 핵심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필립모리스,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 임페리얼브랜즈 등 세계 5대 담배회사 중 4곳이 동남아시아 대부분 국가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도 인도네시아의 경우 자국 기업이 크레텍(kretek)이라는 정향(clove) 담배로 시장을 지켜내고 있다.

흡연의 대안 수단인 전자담배 등장과 규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전자담배 카페. 2018.01.09 ⓒ AFP=뉴스1

그러나 최근 잎담배 시대의 균열이 전자담배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구의 경우 이미 전자담배가 금연을 돕는 대안으로 자리 잡았으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정반대의 우려도 존재한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보건부가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합성 물질이 섞인 소위 '좀비 담배'의 확산을 우려하며 전면 금지를 검토하고 있으며, 베트남에서는 전자담배에 마약 성분을 혼합한 사건이 가파르게 늘자 2025년 시행령을 통해 전자담배의 생산과 수입,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마약성 전자담배 수입과 유통에 최대 징역 20년에 태형 15대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했다.

액상이나 필터에 섞인 합성 물질은 냄새와 외관만으로 구분이 어려워 단속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 각국의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브루나이는 이미 전자담배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해당 국가들은 원래 흡연 규제가 엄격했던 곳으로 전자담배에 관해서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반대로 전통적으로 흡연에 관대했던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 시장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단계이다.

전자담배를 둘러싼 규제는 한편 다른 대안을 찾게 만들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일부에서는 ‘허브담배’가 금연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패션플라워, 옥수수수염, 장미 꽃잎, 연잎 등과 같은 재료를 니코틴 없이 말아서 만든 담배이다. 니코틴이 없어 중독성도 없고 천연재료로 건강할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 일부에서는 어떤 식물이든 태우는 순간 타르와 일산화탄소, 발암물질이 생길 수 있어 100%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담배 제품 자체에 허브, 라이트, 저타르 등의 표현 자체를 쓰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우려를 반영한다.

무엇을 피우는가? 어떻게 피우는가?
싱가포르의 한 사무실 건물 옆에 마련된 지정 흡연 구역의 재떨이에 담배 꽁초들이 놓여 있다. 2017.11.27 ⓒ AFP=뉴스1

담배를 둘러싼 질문의 갈래 중 하나는 무엇을 피우는가이며, 다른 하나는 어떻게 피우는가일 것이다. 캄풍바루에서 내가 본 니빠잎 담배에서 '무엇'은 외래종 담뱃잎이었지만, '어떻게'는 온전히 현지의 문화 방식이 담겨 있었다.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던 우리 조상들도 마찬가지였다. 원료는 밖에서 온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방식은 각 지역의 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전 세계적으로 금연 캠페인이 이어지면서 담배 소비 자체는 줄어들고 있다.

더불어 무엇을 피우는가보다 어떻게 피우는가의 방식이 먼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니빠잎과 체루트에서 궐련으로, 궐련에서 전자담배로 피는 방식이 바뀌면서 동남아시아의 전통 끽연문화도 함께 저물어가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도심 한복판에서 백 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캄풍바루가 몇 세대만 지나면 재개발의 물결 속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것처럼, 이 오래된 담배를 말아 피는 손기술과 문화 역시 조용히 자취를 감출 것 같아 못내 아쉬운 장면이다.

opini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