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아누틴 총리의 총선 승리…화교 기업인 또 일냈다 [동남아시아 TODAY]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편집자주 ...한국에서 '가성비 관광지'와 '저임금 생산기지'로만 여겨지던 동남아시아가 뜨고 있습니다. 높은 잠재력의 소비시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미중 패권 경쟁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동남아를 모릅니다. 더욱 가깝게 지내야 하는 이웃인 동남아의 정치, 경제, 문화를 서강대 동아연구소 필자들이 격주로 소개합니다.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가운데 손든 이)가 지난해 9월 5일 의회에서 총리로 선출된 후 미소를 짓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지난 8일 치러진 태국 총선은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아누틴 찬위라꾼 총리가 이끄는 품짜이타이당은 예상을 뒤엎고 하원 500석 중 193석을 석권하며 원내 제1당으로 등극했다. 선거 전만 해도 진보 성향의 국민당이 우세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 국민당은 118석에 그쳤다. 한때 태국 정치를 호령했던 탁신 가문의 프아타이당은 74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며 3위로 추락했다.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으로 대부분 2025년 말부터 고조된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을 꼽는다. 아누틴은 이 이슈를 활용해 국민들의 영토 주권 수호와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며 보수층과 왕당파를 결집했고, 이것이 결정적인 승리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번 총선 결과는 태국 정치 지형의 근본적인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그간 군소 야당 가운데 하나였던 품짜이타이당은 프아타이당 및 군소 정당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범여권 325석이라는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하게 됐다. 이는 아누틴 체제가 단순한 과도기적 현상이 아님을 증명한다. 국민당이 2025년 말 전략적 오판으로 아누틴의 총리 선출을 지지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그에게 현직 프리미엄을 안겨줬다는 분석도 있다.

아누틴은 북부 이산 지역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보수 대연합의 구심점이 됐으며, 20년 만에 선거를 통해 재집권에 성공한 총리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결론적으로, 표면적으로는 정권 재편이었지만 실제로는 태국 정치가 오랜 기간 반복해 온 군부–왕실–민간 정치세력 간의 긴장 구도가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합된 결과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의 주역이 되며 주목을 받은 아누틴 찬위라꾼은 1966년 방콕에서 태어난 기업가 출신 정치인이다. 또한 태국 굴지의 건설 기업인 '시노-태국 엔지니어링 앤 컨스트럭션'을 소유한 부호 가문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친인 차와랏 찬위라꾼 역시 과거 내무부 장관과 부총리를 거쳐 잠시 총리 대행을 맡았던 거물급 인사였다.

상업적 성공을 기반으로 정치에 진입하는 동남아 화인(華人·중국인) 정치인의 전형적 궤적이 그 집안의 이력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에서 유학하며 공학을 전공한 아누틴은 귀국해 가업을 이어받아 성공한 기업가로 활동하다가 1996년 정계에 입문해 탁신 정부에서 차관직을 지냈으나, 쿠데타 이후 5년간 정치 활동 금지라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의 그는 특정 이념에 얽매이기보다는 실용주의적 성향을 앞세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 그는 2012년 정계 복귀 후 품짜이타이당을 실용주의 정당으로 변모시켰다. 쁘라윳 정부 시절 보건부 장관으로서 아시아 최초의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주도하며 얻은 '대마왕'이라는 별칭은 그의 정책 스타일이 얼마나 현실 지향적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군부, 왕실, 기업 엘리트 그리고 탁신 세력과도 동시에 관계를 유지해 온 그의 처세는 '중재자' 혹은 '킹메이커'라는 평가를 낳았다.

아누틴의 정치적 감각이 가장 빛난 순간은 바로 2025년이었다. 탁신 전 총리 막내딸인 패통탄 친나왓 총리가 태국-캄보디아 국경분쟁 및 전쟁을 유발한 훈센과의 통화 유출 사건으로 해임된 직후 그는 원내 제3당 당수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총리직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그가 잠시 자리를 지키다 물러날 것이라는 '단명 총리'설이 지배적이었으나 취임 100일도 되지 않아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정치적 도박처럼 보였지만 결국 계산된 전략처럼 귀결됐다. 국경 분쟁이라는 외부 변수를 내셔널리즘 동원 장치로 활용하면서 현직 총리의 상징성을 선거 동력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와 막내딸인 패통탄 친나왓 전 총리. ⓒ AFP=뉴스1

흥미로운 점은 아누틴 역시 탁신 가문과 마찬가지로 태국 경제를 장악한 화인 기업가 가문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동남아시아에서 화인들은 경제적 성취에 비해 정치적 영향력은 거의 없다는 통념이 있지만, 국가 혹은 인물별로 다르게 봐야 할 필요는 있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캄보디아의 훈센, 싱가포르의 리콴유 가문처럼 동남아 각국에서 화인 가문은 상업적 성공을 발판으로 정치적 정점에 오르는 경우가 의외로 빈번했다.

태국의 경우 1932년 입헌군주제 전환 이후 배출된 총리 중 과반에 가까운 숫자가 중국계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포브스 태국 기업 순위 상위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CP 그룹 및 계열사, 타이 베버리지 등이 모두 화인 기업이다. 태국의 억만장자 순위 역시 광둥성 차오저우, 객가, 샨터우 출신의 화상(華商)들이 장악하고 있다.

아누틴 총리의 가문은 중국 광둥성 신후이(新會)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후이는 량치차오와 같은 근대 사상가를 배출한 '장먼 우이'(江門 五邑), 즉 장먼 지역 다섯 마을의 하나로, 전통적인 화인 명문 배출지다. 아누틴 역시 중화권에서는 '진석요'(陳錫堯)라는 이름으로 표기되고는 한다.

홍콩의 유력 시사주간지인 '아주주간'(亞洲週刊)은 2025년 당시 아누틴의 총리 등극을 두고 그가 "100% 화인 후예"임을 자부하는 인물이라고 대서특필하며 눈길을 끈 바 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유창한 광둥어와 중국 표준어(보통화)를 구사하며, 사석에서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을 부를 정도로 중화 문화에 대한 정체성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총리 당선 직후 병상의 부친에게 무릎을 꿇고 소식을 알린 일화는 유교적 효 사상이 그의 몸에 배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되기도 했다.

아주주간은 그를 '상업에서 정계로 진출한 동남아 화인 정치의 진화 모델'로 평가했다. 그는 중국 CCTV와의 인터뷰에서 태국 관광을 중국어로 직접 홍보하기도 하고, 이번 2월에 있었던 태국의 중국대사관 주최 춘절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등 스스로 '문화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이는 그가 자기 뿌리를 단순한 혈통이 아닌 외교적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태국 경제를 쥐고 있는 화상 네트워크와 정치권력이 결합한 그의 배경은 중국 지도부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중국 자본을 유치하는 데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실제로 중국과의 외교적 접촉 빈도와 문화적 친화성은 그의 정치 스타일이자 자산의 일부로 보이기도 한다. 태국 왕실의 중국 방문을 수행하면서 가교 역할을 맡는다든가 중국 자본 유치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점은 향후 태국 외교의 무게 중심이 일정 부분 중국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아누틴 정부하에서 태국은 더욱 노골적인 친중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아누틴의 행보는 "태국과 중국은 한 가족"(泰中一家親)이라는 기조를 실천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실제 그는 2026년 수교 51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를 미래를 함께 공유하는 수준으로 격상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미 진행 중인 고속철도 건설을 비롯해 전기차, 디지털 경제 분야에서 중국과의 협력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서방보다는 중국과의 밀착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챙기려는 그의 실용주의적 노선은 화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맞물려 태국 외교의 무게중심을 중국으로 확실히 이동시키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다만 아주주간의 분석이나 중국 언론에서 그의 총리 취임을 꾸준히 지지하는 속내처럼 그를 단순히 '중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태국 총리'로만 규정하는 것은 화인 이주민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바라본 결과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문화적 뿌리와 정치적 선택을 동일 선상에 두는 접근은 현실의 복합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민 혹은 그 후손의 정체성을 '중국인인가 태국인인가'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시도는 실제 삶의 층위를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아누틴 본인조차 스스로를 '중국인' 혹은 '태국인' 중 하나로 명확히 정의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정체성을 구성하는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문화적으로는 중화권 전통에 깊이 닿아 있으나 정치적 삶의 무대는 분명 태국이다. 상업과 정치 양면에서 성공한 이주 가문의 후예라는 점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설명에 가깝다.

아누틴은 탁신 세력과 보수 기득권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과도기적 타협의 산물로 등장했다. 총리직을 오래 유지할지, 아니면 임무를 마치고 다시 킹메이커로 돌아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승부수와 생존 방식은 수백 년간 동남아시아라는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은 화인 디아스포라의 유연함을 그대로 닮았다.

동남아 화인 공동체가 수 세기 동안 생존하고 번영해 온 비결 역시 단선적 충성이나 일방적 정체성이 아니라 경계 위에서 상황에 맞춰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능력을 핵심 자산으로 삼아 온 그 특유의 유연성에 있었다. 중국과 태국, 상업과 정치, 보수와 진보 사이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며 실리를 취하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어느 한쪽으로 규정될 수 없는 기업가 출신 동남아 화인 정치인의 본질을 가장 현실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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