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50→18%' 끌어내린 인도…모디의 '중견국 외교'

러시아산 원유 문제·미국산 구매 확대 맞물려…美-印 무역 합의 윤곽
모디, 트럼프와 공개 대립 최소화…캐나다와도 CEPA 협상 재가동

2025년 2월 13일 미국 백악관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2025.02.13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지예 객원기자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對)인도 관세를 50%에서 18%로 대폭 낮춘 배경으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미들 파워'(중견국) 외교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인도가 미국과는 공개 충돌을 피하며 조용히 협상을 이어가는 동시에, 유럽연합(EU)·영국·캐나다 등과 무역 협정을 확대해 협상력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4일 로이터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방향에 협력하기로 했고, 미국산 제품 구매를 확대하는 내용의 무역 합의가 진전되자 인도산 제품에 부과하던 관세를 18%로 인하한다고 밝혔다. 인도는 에너지·항공기·방산 등 미국산 구매 확대와 함께, 민감한 일부 농업 품목은 보호 기조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협상 균형을 맞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관세 인하를 두고 외신은 인도가 '조용한 외교'로 미국과의 합의를 모색하는 한편, 동시에 다른 국가들과의 대형 협정을 부각하며 백악관에 'FOMO'(소외에 대한 두려움)를 느끼게 했다고 평가했다. 인도는 인구 14억의 거대 소비시장을 무기로, 미국이 중국·러시아 견제 구도에서 협력이 필요한 파트너라는 점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인도는 최근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하며 통상 네트워크를 넓혔다. 이 협정은 양측 교역의 상당 부분에서 관세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장기간 교착 상태였던 협상을 급물살에 올렸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는 평가다.

인도는 캐나다와의 관계 복원에도 속도를 냈다. 캐나다 총리실은 2025년 11월 모디 총리와 마크 카니 총리가 만나 고위급 교류와 경제 협력 재가동에 뜻을 모았고, 카니 총리가 2026년 초 인도 방문 초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인도는 미국 관세 압박이 커지자 대미 의존을 낮추는 동시에, 북미·유럽과의 협상판을 넓혀 레버리지를 키우는 전략을 병행해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 등을 공개적으로 강조한 데 대해 인도 정부는 공개 반박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외신은 모디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를 "미국의 승리"로 설명할 수 있게 한 발 물러서는 방식으로, 불필요한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기류가 읽힌다고 전했다.

27일 인도 뉴델리 하이데라바드 하우스에서 열린 회담에 앞서,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이사회 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2026.01.27.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영미 기자

인도와 EU는 시장 개방과 규제·표준을 둘러싼 이견으로 20년 가까이 무역 합의를 끌어왔지만, 트럼프발 무역전쟁 국면에서 공동 대응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인도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 이후 대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무역 파트너를 다변화하던 캐나다에도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양국은 2023년 캐나다 시민권자이자 시크교 분리주의 운동가의 암살 사건을 둘러싼 갈등으로 관계가 냉각된 뒤 사실상 대화를 멈춘 상태였다.

모디 총리와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지난해 11월 회동에서 양국 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협상을 2년 만에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카니 총리는 3월 초 인도를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통상 전선을 넓히는 데 속도를 냈다. 지난해 5월 영국과의 협상을 시작한 지 약 8년 만에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했고, 뉴질랜드와 오만과의 무역 협정도 마무리했다.

모디 총리는 미국과의 무역 합의를 추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각을 세우는 상황은 되도록 피하려는 기류가 읽힌다. 지난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파키스탄 분쟁 중재를 언급했을 때 모디 총리가 이의를 제기한 뒤, 이후 관계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는 모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모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와의 합의를 '미국의 승리'로 설명할 여지를 열어두며 한 발 물러선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 구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이후에도 인도 정부는 공개적인 확인이나 반박을 자제하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ez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