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차 그리고 관광…베트남 달랏의 산업고도화 실험[동남아시아 TODAY]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장
코로나로 주춤했던 '한 달 살기'가 다시 성행이다. 겨울이면 물가 싸고 따뜻한 동남아에서의 한 달 살기가 더욱 늘어난다. 특히 치안이 안전하고, 외국인에게 개방적인 태국 치앙마이가 단연 인기다. 하지만 최근 급격하게 오른 밧화 환율로 인해 이전만큼 명성을 누리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치앙마이를 대체할 만한 곳으로 떠오르는 곳이 베트남 달랏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신혼여행지로 첫손 꼽는 달랏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개발된 고원 도시이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보이던 매력이 점차 한국으로 퍼져가는 모양새다.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 람동성에 위치한 달랏은 해발고도 약 1500m에 위치한다. 연중 서늘한 기후로 인해 더위에 지친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이 휴양지로 개발한 게 이미 19세기 말이었다. 이들이 개발한 건 호텔과 식민행정기관만이 아니다. 차와 커피를 도입해 대규모 플랜테이션도 만들었다. 커피와 차, 어느 쪽도 베트남이 원산지는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자신들의 호텔·관광 수요에 발맞춰 입맛에 맞는 커피와 차를 공급하기 위해 달랏에서 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달랏의 아라비카 품종 커피는 19세기 말 도입됐다고 한다.
차는 커피보다 늦은 20세기 초반에 프랑스 식민 당국이 차 공장과 차밭을 설립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재배는 식민 당국에 의해서 시작됐지만 달랏의 커피와 차는 오늘날 베트남을 대표하는 산물이 되었다. 베트남 정부는 지속 가능한 커피 산업의 성장과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해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다.
달랏의 차 생산량은 약 300톤 정도이며, 커피는 훨씬 많은 9500~1만 2000톤 수준이다. 품질 좋은 아라비카를 재배하기 위해 커피농장은 고도 약 1650m에 자리 잡는다. 달랏보다 낮은 베트남 다른 지역에서는 로부스타를 재배하지만, 고지대에서 자라는 아라비카가 비싼 스페셜티 커피를 만드는 데 제격이기 때문이다.
달랏의 아라비카는 베트남 국내 프랜차이즈는 물론이고, 독일·이탈리아·스페인과 일본, 미국, 한국으로 수출된다. 프리미엄, 싱글 오리진 커피로 각광 받는 달랏의 커피는 확실한 품질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해외 스페셜티 로스터·카페 등지에 주로 계약 재배나 선구매 등의 방식으로 팔린다.
이러한 판매 방식으로 인해 개별 구매자와의 접촉이 익숙한 커피 농장주들은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발 빠르게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다. 커피 농장에서 시음 행사도 하면서 농장이 카페가 되는 경우도 있다. 관광객이 많지는 않지만 자바나 만델링, 도이창 커피 같은 인도네시아, 태국의 원두에 비해 지명도가 낮은 베트남 커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입소문을 통한 홍보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커피와 차를 매개로 관광을 재설계하며, 1차 산업과 3차 산업을 연결하는 달랏의 실험은 성공할까?
베트남의 산업 지형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제조업과 수출 주도의 고속 성장 국면에서 눈길을 돌린 것이 관광과 서비스 산업이다. 최근 베트남 정부와 지방 도시들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산업이자, 농업·문화·도시를 묶는 종합 산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정부는 올해 해외 관광객 2500만 명, 국내 관광객 1억 50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야심 찬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이자 주요 차 생산국이지만, 농산물의 가치가 높이 평가 받은 것은 아니다. 더욱이 국제 원자재 가격의 변동과 노동 비용의 상승은 새로운 전략을 요구한다. 그 해법 중 하나가 '경험의 산업화'다. 달랏의 커피 농장과 차밭은 이제 단지 생산 현장에 머물지 않고, 관광과 결합한 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다. 차 공장이 카페가 되고, 차밭은 전망대가 되며, 농장은 체험 공간·브랜드 서사의 무대가 된다.
이 과정에서 관광객은 커피와 차를 통해 달랏의 기후와 고도, 식민지 유산, 농업 노동을 간접 경험한다. 사실 이는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이미 해 온 것이다. 하지만 생산과 수출에 급급하던 베트남도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관광에 눈을 돌렸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런 의미에서 달랏은 베트남 산업 구조 변화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달랏의 아라비카 커피와 차 농장은 농작물이 수출 상품이자 관광 자산이 되는 좋은 사례이다. 관광이 농업을 대체하지 않고, 농업의 가치를 확장한다. 달랏은 농업을 버리지 않고 관광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며, 커피와 차는 그 전환의 매개물이 된다. 베트남에서 관광은 기존 산업을 재조직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달랏이 보여준다.
반면 관광 대국인 태국에서 농업과 관광은 각각 발전해 왔다. 치앙마이나 치앙라이의 차·커피 농장이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기는 하나, 대규모 해변 관광과 도시 관광이 여전히 중심이다. 인도네시아 토라자와 자바의 커피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관광과의 결합은 제한적이다. 발리의 명성 앞에서 커피와 차 산지는 관광 산업의 주 무대가 되지 못한다. 달랏이 보여주는 실험은 분명하다. 관광이 농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을 다시 산업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사와 장소성을 동반한 관광은 베트남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선택한 고부가가치 산업의 핵심 전략이다. 제조업과 수출 이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베트남은 기존 산업을 재조직하는 플랫폼으로 관광을 활용하고 있다. 고원 도시 달랏의 차밭과 커피 농장은 그 실험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현장이다. 농업을 산업의 중심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방식에 달랏의 의미가 있다.
커피와 차라는 오래된 작물이 새로운 산업 전환의 매개가 될 수 있는지, 달랏은 지금 베트남 산업 구조 변화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본 칼럼은 한-아세안센터 주관 문화관광 행사를 통해 세부 내용을 취재했다. 한-아세안센터는 한국과 아세안 10개 회원국 간 경제 및 사회, 문화 분야 협력 증진을 목적으로 2009년 설립된 국제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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