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로 가린 창문에 인지 늦어…홍콩 생존자들 "경보도 안울렸다"

화재 고층아파트 주민들 '스스로 탈출' 증언…"처음엔 별일 아닌 줄 알아"
보수공사로 창문 대부분 폼 보드 설치…"아들 전화 받고서야 알아"

홍콩 고층아파트 웡 푹 코트 단지가 불길에 휩싸인 채 힘겨운 진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구경진 기자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아무도 우리에게 경고하지 않았습니다. 경보도 울리지 않았어요."

지난 26일(현지시간) 오후 발생한 홍콩 고층 아파트단지 화재 현장에서 아내와 함께 탈출한 생존자 라우 위흥(78)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뉴욕타임스(NYT)에 이렇게 말했다.

라우 씨는 우연히 욕실 창문을 내다보다 옆 건물을 타고 올라오던 불길을 발견했다. 그는 "불이 고층아파트 외벽을 타고 오르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번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재 경보는 울리지 않았고 문을 두드리는 경고도 없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19층에서 계단으로 내려와 안전지대로 대피했다. 그는 "스스로 탈출했다"고 말했다.

성만 공개한 완 씨의 탈출 경로도 비슷했다. 8층에 거주하는 그는 화재 당시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멀리 구급 사이렌 소리가 울렸을 때도 홍콩의 평소처럼 시끄러운 오후 정도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한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는 비명을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아파트 창밖을 메운 연기를 봤고 즉시 비상계단을 통해 대피했다.

이때는 오후 3시 15분으로 8개 동 중 한 곳에서 화염이 커지기 시작했다는 목격자의 첫 신고로부터 3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가 대피한 직후 당국은 화재 경보를 4단계로 격상했다.

CNN에 따르면 화재 당시 건물의 화재 경보가 울리지 않았으며 당국이 상황을 알리기 위해 문을 두드린 적이 없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대피가 늦어져 피해가 커졌을 가능성도 있다.

27일 홍콩 타이포 지역 왕 푹 콕 아파트 단지 화재 이후 왕 푹 커뮤니티 홀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주민들이 아파트 보수 공사로 설치된 가설물 때문에 밖의 상황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특히 아파트 창문 대부분이 건물 외부에서 진행 중인 보수 공사 때문에 얇은 폼 보드로 덮여 있어 창밖의 불과 연기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웡 식캄 씨가 불이 났다는 소방관 아들의 전화를 받고 창문을 열어봤을 때는 이미 소방관들의 구조 작업이 한창이었다고 한다. 그는 "평범한 화재라고 생각했는데 불이 너무 커져 단지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층 세대에는 아마 100명 넘게 사망했을 수도 있다"며 "도망치지 못한 노인들이 뜨거운 열기에 죽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번 화재는 특히 대피가 어려운 고층 거주 노인들의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웡 푹 코트 아파트에 거주자 약 40%가 65세 이상 노인으로 파악됐다.

장 씨라고 밝힌 한 여성은 실종된 언니와 형부가 처음 불이 난 1동 23층에 살고 있다며 "뭐라 말할 수가 없다"고 AFP에 말했다.

한편 이번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83명으로 늘어났다.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 주민 등을 포함한 실종자 수는 여전히 200여명이 넘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yeh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