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시민사회 반발에도 독재자 수하르토 '국가영웅' 추대

수하르토 통치 기간 납치·살해된 노동운동가도 함께 선정

10일(현지시간) 자카르타에서 열린 '국가영웅의 날' 기념식에서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 수하르토의 초상화가 전시됐다. 2025.11.10. ⓒ AFP=뉴스1 ⓒ News1 이정환 기자

(서울=뉴스1) 이정환 기자 = 인도네시아가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제2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수하르토를 국가영웅으로 추대했다.

로이터, AFP통신 등에 따르면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국가영웅의 날' 기념식을 열고 수하르토를 인도네시아 국가영웅 명단에 추가했다.

이날 수하르토와 함께 지정된 국가영웅에는 인도네시아 민주화 후 당선된 첫 대통령 압두라만 와힛과 수하르토 통치 기간 납치·살해당한 노동운동가 마르시나가 있었다.

이날 기념식에는 수하르토의 딸 시티 하르디얀티 루크마나와 아들 밤방 트리하트모조가 참석했다. 딸 시티는 기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이 나라와 인도네시아 국민을 위해 싸우신 모든 일들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파들리 존 인도네시아 문화부 장관 역시 수하르토가 1949년 네덜란드와의 전투를 포함한 군사 작전에 참여했기 때문에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옹호하며 1965~1966년 당시 수하르토가 저지른 대량학살 혐의를 부인했다.

인도네시아 육군 소장이었던 수하르토는 1965년 쿠데타를 일으켜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로부터 국가 통치권을 빼앗았다. 쿠데타 직후 수하르토 정권은 공산당 가담 혐의로 최소 50만 명을 학살했다.

이후 수하르토는 인도네시아를 철권통치하며 경제발전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국가자금 유용, 인권유린, 동티모르 학살 등을 자행했다.

그는 33년 뒤인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로 발생한 인도네시아 반정부시위의 여파로 퇴진했지만, 아무런 법적 심판도 받지 않은 채 2006년 세상을 떠났다.

수하르토의 사위인 프라보워 현 대통령도 수하르토 재임 시절 특수부대 사령관으로 복무하며 각종 인권침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인도네시아 법률에 따르면 국가영웅 칭호를 받는 사람은 국가에 상당한 공헌을 했고, 범죄 전과가 없으며, 도덕적 정직성과 모범적인 행동을 보이는 등 특정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수하르토는 2010년 이래로 여러 차례 국가영웅 추대가 시도된 바 있다.

수하르토의 국가영웅 추대를 두고 지난 며칠 동안 자카르타에서 시위가 발생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시위대는 대통령궁 근처에서 "학살 장군 미화를 멈춰라", "수천 명이 죽었는데 국가는 잊기로 선택했다"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jw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