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재회 앞두고…'비운의 왕자' 김정남의 타국생활

청년시절 스위스 유학…北 권력 밀려 세계 '전전'
2001년부터 마카오로…부친사망후 주로 亞서 목격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이복형 김정남의 생전 모습. 대북 소식통과 말레이 언론에 따르면 김정남은 지난 13일 오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KLIA)에서 북한 간첩으로 추정되는 여성들에 의해 살해됐다. ⓒ AFP=뉴스1 ⓒ News1 김혜지 기자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살해됐다. 지난 2001년 "도쿄 디즈니랜드를 가려 했다"며 일본에 입국하려다 위조 여권으로 덜미를 잡혀 존재를 드러냈고, 북한 권력서열에서 밀려 세계를 전전한 이 '비운의 황태자'는 사망 직전에도 가족을 만나고자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마카오행 비행기에 오르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의 타지 생활은 어린 시절 시작됐다. 1981년부터 스위스 베른 국제기숙학교에서 수학하며 서양 문화에 익숙해진 김정남은 연휴에 제네바와 프랑스 파리에서 자유로운 쇼핑과 파티를 즐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제네바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야기와 정치학을 공부했으나 졸업은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함께 돌고 있다.

다양한 설이 있지만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김정남의 타지 생활은 20대 때 평양 귀국으로 잠시 중단됐다. 그는 김일성 종합대학에 입학했고 인민군으로도 복무했으며, 복무를 마친 뒤 1998년 국가보위안전부 고위 직책인 부부장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20대 후반의 나이였던 그는 북한 정보기술(IT)술을 이끄는 조선컴퓨터위원회 위원장에도 오르며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남으로서 권력을 승계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을 높였다.

2001년 1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도 아버지와 함께 나타나는 등 이 같은 전망을 굳히던 김정남은 같은 해 5월 일본 도쿄(東京)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돌연 체포, 3일 간 구금되면서 국제적인 '문제아' 낙인이 찍혔다. 그는 도미니카 공화국 위조 여권을 소지한 채 붙잡혔는데 여권에 나타난 이름은 중국어로 '뚱뚱한 곰'인 '팡슝'이었으며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김정일은 즉시 방중 일정을 취소했다.

많은 이들은 김정남이 이 '디즈니랜드' 사건으로 인해 부친의 신뢰를 잃었고 이복 동생에 권력을 뺏기는 수순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미 김정남은 아버지에게 권력 승계에 대한 거부를 연거푸 표명하면서 점점 외면받고 있었다는 설이 있지만 북한 문호 개방을 주장하면서 미운 털이 박혔다는 김정남 스스로의 주장도 상존한다.

이후 김정남의 타지 생활이 본격화했다. 그는 마카오에 일종의 망명 형식으로 2001년부터 거주하기 시작했다. '마카오데일리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김정남이 자녀와 함께 마카오에서 대체로 조용히 지냈으며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는' 해바라기 문양을 창문에 건 두 해변 사이 호화 저택에서 살았다고 보도했다.

2009년에는 김정남의 자녀들(아들 김한솔, 딸 김솔희)이 마카오의 한 스카우트단 단원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등 마카오에서 평범한 일상을 누렸다. 이때 마카오 시내에 있는 또다른 아파트도 보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베이징(北京)도 자주 들렀다. 첫째 부인 신정희가 베이징에 지내고 있었기 때문. 마카오와 베이징에서 그가 카지노를 즐겼다는 목격담은 속속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그는 러시아, 일본, 태국 등을 여행하며 2007년 등 가끔 평양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는 등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졌고 도망설과 암살설까지 나왔다. 2012년 1월 베이징에서 모습을 드러내 김정일 사망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 "아…자연이죠"라고 답하며 이러한 설들을 물리치긴 했다.

이복 동생 김정은의 집권에 따라 평양에서 사실상 쫓겨났다는 것이 현재로선 정설. 그 후 김정남의 생활지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이 됐다. 이때부터 중국의 보호 아래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2012년 핀란드 TV와 인터뷰 모습. (뉴스1DB) 2016.2.15/뉴스1 ⓒ News1

우리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2012년 1월 말쯤 거주지를 마카오에서 싱가포르로 옮겼다. 아들 한솔씨의 학업을 감안해 유럽 입국을 더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당시 소식통들은 전했다.

한솔씨는 파리에서 학업을 끝내고 현재 마카오에 거주하고 있으며, 모친과 함께 중국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국가정보원은 밝혔다. 한솔씨는 보스니아 국제학교를 졸업하고 2013년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한 것이 국내 언론사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김정남은 2014년 1월 싱가포르를 떠나 말레이시아에 입국했으며 수도 쿠알라룸푸르 시내의 한 한국 식당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자신의 피살지가 된 바로 그 도시다.

당시에는 김정은이 자신을 지원해주던 고모부 장성택을 숙청한 뒤 은둔하다가 서서히 외부 활동을 늘리기 시작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롯데쇼핑몰에서 쇼핑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모두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북한 피살 위협에 대비해 중국과 가까운 지역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짧은 인생의 후반기를 타지 생활로 보낸 김정남은 지난 13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여성 공작원 2명에 의해 살해됐다. 북한 대사관은 현재 부검 중인 김정남의 시신 인도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김정남이 숨진 뒤에도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icef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