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홍차 '독립' 뒤엔 고집스러운 한 장인의 40년 투쟁이
최종일의 [세상곰파기]
- 최종일 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인도양의 진주로 불리는 스리랑카는 실론티로 유명하다. 수도 콜롬보에서 약 90㎞ 떨어져 있는 옛 왕조의 수도 캔디와 차(茶) 생산지 하푸탈레를 잇는 낡은 열차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차밭은 녹색 바다로 출렁인다. 최근 다녀온 스리랑카에서 인도양 해변과 더불어 시선을 떼기 힘든 장관이었다. 어느 블로거는 '윈도우 배경화면이 몇시간 동안 계속된다"고 말할 정도다.
현재 '스리랑카=차'로 불릴 정도로 실론티는 유명하지만 그 역사는 채 200년이 되지 않았다. 차 문화는 영국이 1824년 중국에서 들여온 차 나무 한그루를 심으면서 꽃을 피우게 됐다. 당시, 실론(Ceylon)으로 불렸던 스리랑카를 영국이 식민통치(1815~1948년)했던 시절의 일이다.
차 농사가 확산되는 데엔 시간이 걸렸다. 1860년대까지 스리랑카는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 중 하나였다. 커피 녹병 창궐은 진로를 바꿨다. 대다수 영국 커피 재배업자들은 품목을 차로 갈아탔다. 19세기 후반 들어 자연스럽게 차 문화는 만개했다.
현재 차 재배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고, 수출 규모는 15억달러(2013년)에 달한다. 생산 규모는 30만톤(2014년)을 웃돈다. 차밭의 총 면적은 얼추 제주도만하다. 수출량에서는 케냐와 중국에 이어 3위이지만, 금액 기준으로는 2위다. 프리미엄 전략 덕분이다.
고품질의 실론티는 현재는 스리랑카의 자랑이지만 그 속엔 아픈 노동의 역사가 담겨 있다. 노동착취를 근간으로 한 식민지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재배돼왔기 때문이다. 플랜테이션은 영국인이 자본·기술을 제공하고 원주민·이주노동자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농업경영 방식이다.
약 150년 전 동인도 회사는 인력이 필요해 인도 남부에서 타밀 여성들을 대거 데려왔다. (타밀인들의 이주는 2009년까지 20여년 동안 지속된 내전을 일으킨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플랜테이션 방식은 식민지배와 더불어 시작됐지민, 피식민의 관계가 끝나도 수익 구조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스리랑카인들이 뼈빠지게 일해도 큰돈을 벌어가는 쪽은 영국 업체였다.
모순적 구조에 온몸으로 맞서 스리랑카의 첫 독자 브랜드를 일궜고 윤리 경영을 지독하게 고집하는 메릴 조셉 페르난도(86)의 얘기는 그래서 흥미롭다. 페르난도는 1930년 스리랑카 서부 항구도시 니곰보의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했다. 18세에 처음으로 차 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처음에는 법조계에서 일하길 원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 영국의 한 회사에서 차 감별사 연수 기회를 갖게 됐다. 당시 스리랑카 정부는 영국 회사들에 스리랑카인들을 차 감별사로 훈련시켜달라고 압박을 넣었는데 한 회사만 이에 응했다.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했던 때였다. 영국에 머물렀을 때 동료로부터 "너희들은 카레를 너무 많이 먹어, 차를 제대로 감별할 수 없어"라는 발언을 듣기도 했다. 차별은 받았지만 당시 전세계 차 거래의 중심지였던 런던 민싱 레인에서의 생활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됐다.
페르난도의 눈을 잡아끈 것은 모순적 시스템이었다. 차 생산 국가는 원재료 공급에 역할이 국한됐고, 브랜딩과 가치 부가는 해외서 이뤄지고 있었던 것. 이로 인해 대부분의 수익은 차 생산국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1950년대에 실론 차가 킬로그램당 1달러에 팔리면 다국적 기업들은 블렌딩과 패킹 그리고 브랜딩을 해 킬로그램당 50~60달러에 팔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이 과정을 뒤집길 원했다. 내 조국에 더 많은 가치가 돌아가길 원했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그들을 부유하고 하고, 그들은 우리를 가난한게 한다"고 말했다.
수익 창출에만 관심을 보이는 업계의 행태도 페르난도가 남다른 꿈을 꾸게 한 요인이었다. 그는 "찻잎 혼합이 무척이나 우려스러웠다. 실론티라고 불리면서도 실제 실론 차는 30~40%에 불과했다"며 "해외 업체들이 결국에는 실론티를 사용하지 않거나 아주 소량만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페르난도는 스리랑카 고유 브랜드를 떠올렸다. 고향에서 재배된 차를, 고향에서 생산해 전세계에 수출하고 수익을 생산자들에게 돌려주는 구상이다. 그는 "내 스스로가 말했다. 고객들에게 최고의 차를 전할 것이다. 또 만약 내가 성공한다면, 나는 차 생산자들과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대우를 해줄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페르난도는 귀국해 1962년까지 한 회사에서 일했다. 당시는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총리의 사회주의 정책으로 일부 영국 회사들은 스리랑카를 떠날 때였다. 투자자들의 도움으로 한 회사를 인수했다. 하지만 주주들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그러다 꿈을 좇아 회사를 설립했다. 18명의 직원을 뒀다. 다국적 기업에 차를 파는 게 주업무였다. 업계 관행은 여전했다. 미국과 유럽, 호주의 바이어들은 스리랑카 차 비중을 줄이고 대신에 값이 싼 다른 나라 차와 섞고 또 이로 인해 수익을 늘리려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형 업체들이 작은 회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차와 커피 무역 분야에선 가족 경영이 일반적이었다. 페르난도의 지인들도 회사를 팔아버렸다. 하지만 당시 그는 "다국적 기업의 전략은 차를 파는 것이지 실론티를 파는 것이 아니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 2차례 토지 개혁은 또 꿈의 실현을 늦추게 했다. 그는 1988년에 두 아들의 이름을 더해 만든 브랜드 딜마(DILMAH)를 론칭했다. 전세계에서 차 생산자가 소유하는 첫 브랜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딜마는 차의 품질을 보존하기 위해 자동화를 피했다. 케냐와 인도에서 대다수 생산자들이 제조 프로세스를 통해 홍차만 집중 생산하지만, 보다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전통적인 접근을 선호했다. 또 사람경영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가족경영을 고수하고 있다.
페르난도는 심지어 공정무역(Fair Trade) 라벨도 소비자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마케팅 전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아 생산자가 수익의 많은 부분을 가져가는 제품에 붙는 라벨이다.
페르난도는 "많은 소비자들이 나에게 '공정무역 라벨을 붙이고 가격을 높이라'고 조언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공정무역 라벨은 마케팅 전략이다"며 "당신은 그걸 위해 추가 비용을 내야 하지만 농부는 그걸 볼 기회도 없다. 유통업자는 자기 몫을 가져가고 수입업자도 자기 몫을 챙긴다. 인상분은 농부에게 직접적으로 가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페르난도는 "무역에 관해서 공정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역이란 것은, 당신이 키우고 내가 구매하고, 돈을 버는 것이다. 그것이 무역이다. 당신이 당신의 작물을 마케팅한다면, 그것이 가장 공정한 형태의 무역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모든 다른 차 브랜드는 크든 작든 간에, 무역 회사에 속한다. 무역업자는 대도시에 있으면서 어디에서든 가장 싼 차를 사들이고, 그걸 포장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붙인다. 그는 그 업계에 충성심 혹은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다.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의 비판은 계속됐다. "우리는 루스 리프(loose leaf, 통잎 그대로 담긴)를 담은 일반적인 홍차로 시작했다. 그러다 봉지(envelope)가 나와 우리도 따랐다. 주로 방열 봉지였다. 그건 적합하다고 본다. 그런데 어느 회사가 끝이 달린 봉지를 내놓았다. 같은 차인데 끈이 달렸다고 가격이 인상됐다"
그는 "그러더니 그들은 종이 봉투를 줬다. 뒤에는 은박지 봉투로 바뀌었다. 항상 뭔가를 더했다. 가난한 차는 그대로다. 포장이 바뀌고 가격은 높아지는데, 누가 돈을 버나? 소비자들은 똑같은 차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며 "또 그들은 첨가물을 가한 차를 내놓았다. 지금은 허브차다"고 말했다.
땀은 결실을 맺었다. 딜마는 현재 전세계 10대 차 브랜드 중 하나다. 2005년에는 브랜드 싱크탱크인 메딘지 그룹으로 양심 브랜드로 선정됐다. 세전 수익의 10%를 MJF 자선재단에 보내고 재단은 학교와 병원, 장애인 시설 등을 후원하고 있다. 또 소기업 창원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페르난도는 지난해 5월에는 '오슬로 기업평화상(Oslo Business For Peace Award)'을 받았다. 오슬로 비즈니스 평화상은 전 세계 기업 수장들의 사회적 책임에 기반한 기업활동을 독려·증진코자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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