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매치 272회' 간절함…'원팀' 밑그림 잡은 홍명보-손흥민 [임성일의 맥]

팀 위한 손흥민 역할 변화 단행…첫 단추 성공적
두 '전설' 리더십에 북중미 월드컵 성패 달려

북중미 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전술 홍명보 감독과 손흥민이 함께 빚는 마지막 월드컵이 될 공산이 크다. (KFA 제공)

(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이제는 손흥민이 얼마나 오래 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떤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축구대표팀의 9월 A매치 2연전 중요 포인트는 홍명보 감독이 말한 이 부분이었다. 팬들도 일부 언론도 '주장 변경' 이슈에 갇혀 있었으나, 사실 캡틴 교체 여부는 곁가지다.

"(주장 교체는)계속 고민할 일이나 당장 바꾼다 안 바꾼다 결정하진 않았다. 변경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던 홍 감독 중언부언은, 당황해 말이 꼬인 게 아니라 그냥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흥민의 역할과 비중'은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껏 손흥민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호쾌한 드리블과 양발을 잘 쓰는 장점을 살리기 위해 공간 활용이 용이한 윙포워드가 주 포지션이던 손흥민은, 상대와 상황에 따라 종종 원톱으로도 배치되는 변화가 있었을 뿐 늘 '상수'였다.

어디서 뛰든 손흥민은 항상 대표팀 공격의 중심이었다. 당연한 듯 선발로 나서 특별한 일 없으면 끝까지 뛰었다. 결국 홍 감독 발언은 '고정값'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대표팀 안팎에서의 손흥민 영향력과 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생각하면 꺼내기 쉽지 않은 화두다. 영원한 폼을 유지하는 선수는 없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지만 그 시점을 잡는 것은 아주 어렵다. 팀과 선수를 위한다는 결정이 자칫 균열의 길로 들어가는 빌미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9월 미국 원정을 주목했는데, 화음이 괜찮았다.

대표팀의 오랜 에이스 손흥민은 '팀을 위한 손흥민'으로의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로 출전한 미국전에서 손흥민은 이적한 LA FC에서처럼 원톱으로 전진 배치돼 전반전에만 1골1도움을 올리며 2-0 승리의 주역이 됐다. 후반 18분 오현규와 교체돼 벤치로 돌아올 때까지, 65분가량 쌩쌩하게 뛰었다.

멕시코전은 벤치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후반전 시작과 함께 투입된 그는 0-1로 끌려가던 후반 20분 멋진 발리 슈팅으로 판을 바꿨다. 멕시코의 강한 압박에 고전하던 홍명보호는 경험 풍부한 손흥민의 가세와 함께 살아났고 결국 2-2 무승부라는 값진 성과를 거뒀다.

팀을 위해, 내년이면 서른넷이 되는 선수를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 판단한 감독은 결심을 빠르게 이행했다. 그리고 사령탑의 의중을 파악한 베테랑은 다른 옷을 입는 것에 주저하지 않고 새 역할에 충실했다. 2연전은 끝났고 축구대표팀 일정만 기다리는 호사가들은 조용하다. 나쁘지 않았다는 의미다.

오랜 에이스가 '팀을 위한 손흥민'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이제 '원팀'을 위한 밑그림은 마련됐다. 북중미 월드컵 개막까지 남은 9개월, 그 위로 어떻게 색을 입히느냐에 따라 대회 성패가 달렸다. 두 사람이 계속 중심을 잡고 나아가야한다.

단단한 소신으로 팀을 이끌어 가고 있는 홍명보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멕시코전 출전으로 136번째 A매치를 치른 손흥민은 차범근-홍명보와 함께 한국 A매치 최다출전 타이기록자가 됐다. 홍명보-손흥민 두 사람의 A매치 기록이 무려 272회다.

대학생 신분이던 1990년 2월 처음 A대표팀의 부름을 받은 홍명보는 2002년 겨울까지 13년 가까이 한국 축구의 얼굴이었다. 2010년 12월 18세 앳된 얼굴로 태극마크를 단 손흥민의 대표팀 생활은 15년을 향하고 있다. 홍 감독은 현역 시절 4번의 월드컵(1990·1994·1998·2002)에 출전했고 3번 본선(2014·2018·2022)을 경험한 손흥민도 4번째 출전을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한 홍명보 감독과 손흥민이다. 다른 각도로 접근하면 세계의 벽 앞에서 가장 많은 좌절을 겪은 이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 짐작도 어렵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은 두 거물이 지도자와 선수로 함께 빚는 마지막 작품이 될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도 대충 나간 월드컵 없었겠지만 더더욱 각별한 무대가 다가오고 있다. 끝까지 훈수만 두려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지켜보는 이들도 '원팀'이 돼야 한다.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