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주년]'해방둥이'이세연 “한일전은 이겨야했던 게 아니라 질 수 없었다”
- 임성일 기자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스포츠는 국민들이 기대 쉴 수 있는 언덕과 같았다.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하루하루가 춥고 배고팠을 때, 희망을 말하는 것조차 사치였을 때 타국에서 들려오는 대표팀의 승전보는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밥이고 술이었다. 특히 축구가 그랬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아시아를 호령하던 축구대표팀의 인기는 대단했다. 진짜 ‘국민 스포츠’였다.
[광복70주년]을 기념해 그 무렵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는 1945년생 ‘해방둥이’ 이세연 한국OB축구회 부회장을 찾아 인터뷰를 청했다. 1960~1970년대 한국 대표팀의 든든한 수문장이었던 이세연 부회장은 지금까지도 축구 속에서 살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최근 끝난 동아시안컵을 떠올리며 “우리가 일본보다 FIFA 랭킹이 높아졌지?”, “슈틸리케 감독이 새 얼굴들을 많이 뽑아 갔는데 생각보다 잘했어”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축구 발전사를 몸으로 써내려간 이세연 부회장에게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느새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버린 어제를 담담하게 회상하던 원로의 목소리는 내일을 걱정하던 순간 힘이 넘치는 젊은이의 것으로 변했다.
△선수가 빨래하고, 김치 때문에 신고 당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난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처럼 살기는 힘들 것 같아. 그만큼 지독하게 보냈다는 뜻이야. 먹고 살기 위해 악착같이 운동했던 시절이지. 태극마크를 달고 싶어서, 그 태극마크를 지키고 싶어서 죽기 살기로 운동했어. 그런데 다시 돌아가라고? 싫어.”
힘들게 운동했던 시절이었다. 당대의 골키퍼였던 이세연도 당장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했다. 선수로 활동하면서 이것저것 부업을 했을 정도다. 가욋돈을 벌기 위한 외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생계를 위한 일이었다. 그땐 그랬다.
“요즘 선수들은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타고 원정 경기를 다니잖아? 그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 프로펠러 달린 군용기를 타고 나간 적도 있었으니까. 한 번은 한쪽 프로펠러가 멈춰가지고 되돌아 온 적도 있었어. 숙소? 호텔은 어림없지. 학교 같은 건물의 옥상 같은 곳을 빌려서 잠을 자기도 했으니까.”
지원 스태프들이 총출동, 선수들은 운동만 전념하는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197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던 축구대표팀은 선수들이 직접 빨래를 했다. 먹을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이세연 부회장은 “유럽에서 고추장이나 김치를 꺼내 먹다가 신고 당한 적도 있었어. 냄새 난다고. 완전히 무시 당한거지. 할 수 없이 그쪽에서 주는 것만 먹었는데 역해서 입에 들어가나. 그냥 힘없이 뛰는 거지”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는 “옛날에는 비행기가 10시간 이상 날아갈 수 있다는 것도 몰랐어. 언젠가 며칠이 걸려 아르헨티나를 갔는데, 도착해서 일주일 동안은 내 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더라고. 그런 상태에서 경기를 하니 이기겠어?”라면서 “영양제는 비싸서 엄두를 못 냈지. 구하기도 힘들었을 때고. 음식 안 맞으면 그냥 물만 먹고 뛰는 거야. 지금 선수들은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라고 회상했다.
그때와 견준다면 월드컵을 개최하고,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고,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가 잉글랜드 클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지금은 전혀 딴 세상이다. 하지만 예나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있긴 있었다.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의 대결에 임하던 자세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도 차이가 좀 있다. 그때는 지금보다 절실했다.
△대회 우승보다 중요했던 한일전
“자랑을 좀 하자면, 난 일본하고 붙어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어.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지만 그건 확실히 기억해. 17번 정도 한일전에 나간 것 같은데, 비긴 적은 있었지만 진 경기는 없었어. 그때 한일전은 이겨야했던 경기가 아니라 절대 질 수 없는 경기였지.”
동아시안컵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한일전으로 연결됐다. 아무래도 할 말이 많았다. 이세연 부회장은 “전반전이 끝나면 선수들끼리 작전을 짜잖아. 그런데 한일전은 아냐. 그때는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오늘 지고 들어가면 김포공항에서 옷이 홀딱 벗겨질 거다’, ‘지고 나서 애인을 어찌 볼 것이고 부모님은 어떻게 뵐 것이냐’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니까”라는 에피소드를 전해주었다.
한국이 많이 이겼으나 그렇다고 한국 축구의 수준이 일본보다 더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일본이 선진 축구를 먼저 습득했던 것은 사실이지. 솔직히 말하면 전력은 일본이 좋았어. 하지만 정신력에서는 우리랑 비교할 수가 없었지”라면서 “한일전 전날은 잠도 못 잤어. 대회 우승은 못해도 일본은 꺾어야했어”라고 특수했던 상황을 소개했다.
당시와 견주면 지금의 한일전은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원로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모습이겠다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당연한 현상이라 받아들였다. 이세연 부회장은 “우리는 직접적으로 (일본에게)아픔을 겪었던 부모님을 보고 자랐으니까 죽어도 일본한테는 질 수 없었어. 물론 지금은 달라. 선수들에게 뭐라 그럴 문제가 아니야”라며 그만큼 변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고 말했다.
△진짜 발전하려면 국민과 함께 미쳐라
원로 축구인의 눈에는 모든 게 넉넉해 보일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요즘에 축구를 했다면 나도 김병지만큼 오래 뛰지 않았을까?”라는 마냥 농담 같지 않은 말을 전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부러운 시대가 됐다. 하지만 오히려 한 가지는 그때가 더 좋았다. ‘인기’다.
이세연 부회장은 “한창 때는 거리를 다니지 못할 정도였어. 연예인들이 축구 선수들 만나고 싶어서 숱하게 연락했을 때니까. 감독 선생님들이 엄하지 않았다면 죄다 연예인들이랑 결혼했을 거야”라며 일종의 무용담도 풀어놓았다. 과장이 조금은 섞였겠지만 전혀 없던 이야기는 아니다.
적어도 ‘국민적 성원’이라는 측면에서는 퇴보하고 있는 한국 축구다. K리그 경기장이 허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A매치가 열리는 경기장도 관중과 빈 좌석이 비슷한 수준이다.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원로 축구인은 아주 건강한 충고를 전했다. 일단 후배이자 제자들의 생각전환을 원했다.
“모든 것이 좋아졌지. 선수들 체구도 커졌고 운동할 수 있는 환경도 그만이야. 우리나라도 많이 발전했어. 하지만 그래도 더 노력해야해. 요즘 선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그거야. 우리의 축구가 아직은 남미나 유럽의 축구와 똑같지는 않거든. 그걸 알아야해.”
‘자만을 버리고 더 배우고 노력하라’ 쯤으로 정리할 수 있는 조언이었다. 그는 “선수들도 그렇고 지도자들도 더 많이 연구해야해. 어차피 축구는 그쪽(남미나 유럽)의 스포츠야. 우리가 발전했다고 우리 것만 고집하지 말고 배우고 흡수해야해. 유럽 축구는 재밌잖아. 우린 아직 아니잖아. 그럼 더 배워야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원로의 시선은 더 넓은 곳까지 보고 있었다. 고희에 이른 노장의 마인드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젊었다. 그래서 그 울림은 더 컸다.
“이제 대한민국도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겼어. 전자제품은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고. 가수들도 그렇잖아. K-POP? 그런 것들은 우리 국민들도 인정을 해. 하지만 아직 축구는 아니지. 국민들과 같이 가야해. 유럽이나 남미는 일주일 내내 돈 벌고 남은 돈으로 축구를 보는 것이 낙이야. 자식을 낳으면 축구 선수를 시키고 싶은 게 꿈이야. 축구가 곧 생활인 것이지. 우리는 멀었어. 진짜 남미나 유럽을 쫓아가고 싶다면, 온 국민과 함께 미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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