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맥] 승패를 가른 김남일의 ‘성깔’과 차두리의 ‘위치’
- 임성일 기자
(서울=뉴스1스포츠) 임성일 기자 = FC서울과 전북현대의 만남은 이제 K리그의 새로운 ‘소문난 잔치’ 느낌을 준다. 새롭다는 수식어도 점점 불필요해지고 있다. 전북은 2009년과 2011년 K리그 챔피언이고 서울은 2010년과 2012년 리그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포항을 제외하고, K리그 우승 트로피는 두 팀 사이를 오갔다. 자타가 공인하는 강호들이다.
때문에 2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두 팀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은 K리그 팬들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던 잔치다. 풍성한 먹을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음식에서 묘한 맛이 났다. 상차림이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분식집에 갔는데 안심 스테이크가 나왔다거나 자장면을 비비려고 젓가락을 쪼갰는데 갈비탕을 받은 느낌이다.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맛은 있었다.
당황스러움을 전달한 주체는 전북이었다. ‘닥공’이라는 확실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스리백을 들고 나왔다. 센터백을 3명 세우고 좌우에 윙백을 포진 시킨 뒤 중원에 두 명의 수비형 MF를 배치했다. 철옹성을 세운 뒤 카운트어택을 노린다는 복안이었다. 최강희 감독이 스리백 카드를 꺼내든 것은 올 시즌 처음이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선 전북의 변화에 전반부터 당황했던 게 사실이다. 우리도 전주 원정을 가서는 ‘선 수비 후 역습’ 전략을 썼고 사실 재미도 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했다. 전북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 몰랐다. 솔직히 좀 당황했다.”
최용수 FC서울 감독의 속내다. 깔끔하게 인정했다. 선발 출전명단을 보면서 어느 정도 수비에 치중할 것이라는 느낌은 받았으나 정도가 더 심했다. 최강희 감독은 딱히 이길 마음이 없었다. “전북도 비기는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했던 것”이라는 말과 함께 완전히 마음먹은 ‘잠그기’였음을 고백했다. 전북의 자물쇠는 강했고 그 앞에서 서울은 당황했다.
경기는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카이오의 극적인 결승 골과 함께 휘슬이 울리면서 전북의 1-0 승리로 끝났다. 최강희 감독의 ‘독한 외도’는 최상의 결말로 막을 내렸다. FC서울은 완전 꼬였다. 가뜩이나 전북의 형태가 낯설었는데 처음 접한 자물쇠 앞에서 ‘왕년의 진공청소기’가 중요한 순간마다 성깔을 부리며 맥을 끊었으니 또 말렸다.
2일 경기에서 전북 승리의 수훈갑은 단연 김남일이었다. 영리했다. 아니 영악했다. 스리백 앞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던 김남일은 무엇이 완급이고 경기 조율인지 몸으로 설명했다. 필요한 순간에 툭, 공을 건드리거나 퍽, 상대와 충돌했다. 후자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김남일의 의도된 몸싸움에 서울 선수들이 평정심을 잃었다.
유난히 거칠었다.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장면도 잦았다. 스스로도 경고를 받았고 동료의 파울 때도 크게 항의했다. 서울 선수들과 엉켜 붙는 일들도 빈번했다. FC서울의 미드필드진에서 김남일과 비슷한 역할을 맡았던 오스마르는 K리그 데뷔 후 가장 피곤한 경기를 했을 것이다.
오스마르 뿐 아니라 에벨톤과 에스쿠데로 등 FC서울의 외국인 공격수들은 모두 흥분했다. 최용수 감독은 벤치에서 손을 아래로 내리기 바빴다. 흥분하지 말라는 지시였는데, 김남일이 부리는 성깔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드 위에서 최용수 감독만큼 답답했던 이가 차두리다.
역시 베테랑인 차두리도 상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나왔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두리의 위치는, 직접적인 몸싸움이 펼쳐지는 곳보다 한참 뒤였다. 이날 차두리는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된 김주영 대신 센터백으로 나섰다. 후방에서 수시로 소리치면서 후배들에게 침착하라는 전달을 내렸으나 목소리 흡수보다 흥분 속도가 더 빨랐다.
서울에도 경험 풍부한 선수들이 있다. 그런데 하필 위치가 전부 수비수였다. 차두리와 캡틴 김진규 등 고참들이 뒤에서 답답해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마 FC서울의 중원에 김남일만큼 노련함과 성깔을 갖춘 플레이어가 있었다면, 차두리급 경험을 지닌 이가 허리 라인에 있었다면 경기 양상은 또 달라졌을지 모른다.
왜 리더가 있어야하는지, 노련한 선수의 경험이 왜 필요한지, 수시로 변하는 상황 변화에 따른 적절한 대처가 왜 중요한지 전북과 서울의 경기를 통해 충분히 전달됐다는 생각이다. 화끈한 맞불의 향연은 없었으나 두 팀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은 축구의 또 다른 묘미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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