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유로 2008 아르샤빈처럼? 'No 시로코프, No 파티' 러시아의 기대

2008년 히딩크, '2경기 징계' 아르샤빈 데려가 4강 진출

러시아 대표팀의 로만 시로코프©AFP= News1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일처럼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볼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이 감독을 역임한 4개국이 본선에 출전하고 게다가 그중 한 나라의 차기 감독으로 이미 내정된 상황이라면 감회가 실로 남다를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4위를 이끈 거스 히딩크(68·네덜란드)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뿐 아니라 네덜란드·호주·러시아가 본선에 참가하며 이번 월드컵이 끝나면 네덜란드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는다.

히딩크의 월드컵 최고 성적은 1998년(네덜란드)과 2002년의 4위이고 유럽선수권에서는 2008년 러시아를 맡아 준결승에 진출했다. 공교롭게도 월드컵과 유럽선수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한국과 러시아가 2014월드컵 H조 1차전(18일 오전 7시)에서 만난다.

2008년 유럽선수권 '팀 오브 토너먼트' 23명 중에 러시아 선수는 4명이었다. 수비수 유리 지르코프(31·디나모 모스크바)와 미드필더 콘스탄틴 지랴노프(37), 공격수 안드레이 아르샤빈(33·이상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만 파블류첸코(33·로코모티프 모스크바)가 그들이다.

6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탓인지 이들 중에서 2014 월드컵 최종 23인 명단에 포함된 것은 지르코프가 유일하다. 그러나 3월 5일 아르메니아와의 홈 평가전(2-0승)만 해도 주전 왼쪽 날개로 활약했던 지르코프마저 이후 잇달아 결장하며 입지가 좁아졌다.

비록 이번 월드컵에는 불참하나 러시아의 2008년 유럽선수권 4강 과정에서 러시아 최고 스타는 안드레이 아르샤빈이었다. D조 2위를 놓고 격돌한 스웨덴과의 조별리그 최종전(2-0승)에서 아르샤빈은 후반 시작 5분 만에 지르코프의 패스를 받아 오른발 슛으로 추가 골을 넣었다. 네덜란드와의 준준결승(3-1승)에서는 연장전 마지막 8분 동안 1골 1도움의 맹활약으로 짜릿한 역전승을 연출했다.

2009년 1월 31일 아스널 FC는 이적료 1650만 유로(약 229억5200만 원)에 아르샤빈을 영입했다. 이는 외국리그에 입단한 러시아 선수의 이적료로는 역대 3위다.

그런데 아르샤빈의 이러한 성공은 히딩크 감독의 결단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2007년 11월 21일 안도라와의 유럽선수권 예선 E조 최종전(1-0승)에서 아르샤빈은 경기 종료를 6분 남겨 놓고 폭력적인 행동으로 즉시 퇴장을 당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는데 이는 당연히 유로 2008 본선에도 적용됐다.

히딩크는 2007년 주장으로 선임할 정도로 신임한 아르샤빈을 조별리그 첫 2경기에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디펜딩 챔피언 그리스를 필두로 스페인·스웨덴과 함께 D조에 속했다. 스페인은 유로 2008 우승팀이다.

조별리그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3경기 중 2경기에 뛸 수 없다면 아무리 신뢰하는 선수라도 선뜻 데려가기 어렵다. 아르샤빈은 자신을 본선 명단에 넣은 히딩크의 쉽지 않은 선택에 4강 진출 견인으로 보답했다.

유로 2008 이후로 6년이 지났다. 러시아대표팀은 2012년 7월 13일부터 파비오 카펠로(68·이탈리아)가 감독이다. 그런데 6년 전과 매우 흡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로만 시로코프(33·FC 크라스노다르)는 이번 시즌 본선대비 평가전 5경기 중에서 3경기를 선발 중앙 미드필더이자 주장으로 나왔다. 지역 예선에도 10경기 개근하면서 3골 4도움을 기록했고 마지막 2경기에서는 주장 완장을 찼다.

그러나 최근 A매치 2경기에서는 부상으로 벤치에도 앉지 못하고 있다. 5월 31일 노르웨이와의 원정 평가전(1-1무)을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모스크바에서 가졌던 마지막 훈련에서도 시로코프는 팀 훈련에서 제외되고 개인 프로그램만 소화했다.

월드컵 예비 25인 명단이 소집된 후 치러진 평가전에 연달아 빠졌으니 아무리 러시아 중원의 핵심이라 해도 본선에 데려가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구심이 제기될만 하다. 하지만 2일 러시아축구협회가 발표한 월드컵 최종 23인 명단에 시로코프는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출정식을 겸한 6일 모로코와의 홈 평가전에도 시로코프가 나온다고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브라질 현지에서 자체 훈련 외에 비공식 평가전이 있을 수도 있으나 월드컵 전까지 A매치는 모로코전이 마지막이다.

3일 러시아 국영 스포츠 통신사 'R-스포르트'는 자국의 월드컵 최종명단을 크게 3가지 관점에서 평가했는데 마지막이 바로 부상 중인 시로코프의 잔류였다. 'R-스포르트'는 2002월드컵에 참가한 전 러시아대표 공격수 루슬란 피메노프(33)에 조언을 구했다. 피메노프는 시로코프에 대한 러시아의 기대와 그를 선택한 카펠로 감독의 의중을 한마디로 압축해서 표현했다.

"시로코프의 최종명단 포함은 유로 2008 4강 당시 아르샤빈과 같은 의미다"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살아있는 전설' 프란체스코 토티(38)의 가치를 '노 토티, 노 파티'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토티가 없으면 파티도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스포츠일간지 '스포르트 엑스프레스'가 5월 26일 슬로바키아와의 홈 평가전에서 1-0으로 이겼음에도 자국어가 아닌 '노 시로코프, 노 파티(No Shirokov - no party!)'라는 영어가 포함된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것에서 현재 러시아대표팀에서 시로코프가 어떤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다.

유로 2008의 아르샤빈처럼 시로코프가 조별리그 도중 돌아와 러시아를 토너먼트로 이끌 수 있을까? 러시아는 구소련 붕괴 후 월드컵에서 18위(1994년)·22위(2002년)로 조별리그 탈락만 경험했다. 12년 만에 나서는 본선이자 2018월드컵 개최국으로 호성적이 절실한 러시아는 시로코프의 '파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