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사라지자 가슴이 넉넉해진 인간 박지성

과거 ‘~ 때문에’ 이미지 뒤엎고 넉넉한 입담 과시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 PSV 아인트호벤의 친선경기 종료 후 박지성이 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무게감을 내려 놓은 박지성은 현역 시절답지 않은 입담으로 새로운 매력을 선보였다.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스포츠) 임성일 기자 = 박지성은 현역 시절 ‘두 개의 심장’으로 통했다. 박지성을 설명하며 ‘현역 시절’이라는 표현을 등장시켜야 할 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으나 이제 현실이 됐다.

22일 오후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에인트호벤과 수원의 친선경기는 박지성의 고별전 1탄이었다. 2탄은 오는 24일 창원 축구센터에서 경남FC를 상대로 열린다. 그때는 진짜 마지막일 공산이 크다. 이제 ‘현역 시절’이란 수식어와 익숙해져야 한다.

그가 ‘현역 시절’ 심장을 두 개나 가진 돌연변이로 통했던 것은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양을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언젠가 황선홍 포항 감독이 전한 설명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황 감독은 “지성이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축구를 했던 사람인데도 놀라울 때가 있다. 선수들이 더 잘 안다. 저쯤이면 정말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뛸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때도 지성이는 기어이 한 걸음 두 걸음을 더 뛴다”며 혀를 내둘렀다.

누군가 붙인 ‘두 개의 심장’이라는 수식어는 꽤나 적절했다. 이처럼 남들보다 더 뛸 수 있는 심장 두 개는 박지성이 유럽에서 버틸 수 있는 특별한 무기였다. 그러나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지칠 줄 몰랐기에 몸이 혹사되는 줄도 몰랐다. 지난 14일 수원시 ‘박지성 축구 센터’에서 공식 은퇴를 선언하던 박지성은 “(많이 뛸 수 있는)내 장점 때문에 무릎에 이상이 왔다. 경기 중에 입은 충돌로 인한 부상으로 무릎이 상한 것은 아니다. 사실 2002월드컵 이후 일본에서의 마지막 시즌부터 무릎이 좋지 않았다”면서 “내가 테크니션은 아니지 않는가. 살아남기 위해서 더 많이 뛸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박지성을 세계적인 레벨로 이끌었던 두 개의 심장이 다소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정하게 한 이유가 됐으니 모순이다. 결국 박지성도 사람이었다. 이제 그는 심장을 하나 잃었다. 대신 따뜻한 가슴을 얻었다. 한결 여유로운 ‘인간 박지성’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느낌이다.

그의 익살스러운 대답에서 현역 시절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이 사라지자 가슴이 넉넉해진 인간 박지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 News1 박정호 기자

‘현역 시절’ 박지성은 밋밋한 코멘트의 대명사였다. 무엇을 물어보든 ‘~때문에’로 끝나던 그의 대답은 많은 패러디 물을 낳았을 정도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굉장히 중요한 경기이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든지 “잘해야 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는 식이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때문에’를 말하던 ‘현역 시절’ 박지성을 떠올리면 고별전에서 터진 입담은 생소했다.

박지성은 22일 수원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서 박지성답지 않은 넉살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플레이를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망한 경기”라는 촌철살인으로 시작된 그의 인터뷰는 거의 매 질문에 유머가 섞여 있었다.

이날 경기장에 모인 팬들은 후반 6분 박지성이 교체되어 필드 밖으로 나갈 때 ‘위쏭빠레’라는 그의 주제가를 선물로 전했다. 에인트호벤 시절 네덜란드 팬들이 만든 ‘박지성 송’이다. “네덜란드가 아닌 한국에서 그 노래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던 박지성은 “에인트호벤 팬들이 노래를 참 쉽게 만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고별전에 대한 느낌을 묻는 질문에 “여전히 은퇴를 결정한 것에 대한 미련은 없다. 다만 오늘 경기를 하지 말았어야했다”던 너스레란 예전에는 상상키 힘든 일이다. 마냥 장난만 친 것은 아니다. 말 속에 뼈도 있었다. 다소 적은 관중(약 1만5000명)에 박지성은 “1만5000명 앞에서 뛴 것은 일본 시절 이후 처음인 것 같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부족한 축구 열기에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전한 것이다.

요컨대 할 말 다 했다. 거리감이 느껴지던 ‘현역 시절’과는 딴판이었다. 그만큼 홀가분해졌다는 방증이다. 전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었고 말 한 마디도 조심스럽던 슈퍼스타였다. 그 무게감을 내려놓자 장난도 스스럼없이 치는 평범한 남자가 되었다.

하나의 심장이 사라지자 가슴 넉넉해진 인간 박지성으로 돌아왔다. 필드 위에서가 아닐 뿐이지 앞으로 박지성을 볼 기회는 많다. 축구 팬들은 잃은 것만 있는 게 아니다.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