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과 황의조, '최고의 시즌'을 위한 두 사내의 '승부처'
- 안영준 기자

(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1992년생 동갑내기 두 사내가 나란히 승부처와 마주했다.
이번 시즌을 '초반에 엄청났던'에 그치지 않고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 남기려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주전으로 완전히 자리 잡고 그토록 바라던 '1옵션 스트라이커'로 거듭나려는 황의조(보르도)의 이야기다.
두 선수 모두 지금까지의 흐름은 훌륭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금만 더 나아간다면 대단히 유의미한 시즌으로 기억될 수 있다.
훌륭한 시즌을 보내느라 이미 지쳐 있지만, 훌륭하게 달려온 덕분에 바라는 고지가 가까운 곳에 있다. 어렵지만, 조금만 더 가면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 그들 스스로도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즌 막바지를 향해가는 지금이 중요한 '승부처'다.
<b>◇ 손흥민의 2월, '커리어 하이'를 준비하라 </b>
손흥민은 이번 시즌 초반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출발을 했다. EPL에선 2라운드 사우샘프턴전에서 '1경기 4골'을 넣으며 펄펄 날았고 이후 4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 2골1도움, 5라운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 1골1도움, 6라운드 번리전 1골 등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9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전, 11라운드 아스널전 등 어려운 경기에서도 여지없이 득점포를 가동했다. 리그 초반 득점 랭킹 가장 높은 곳에는 늘 손흥민의 이름이 있었다.
단순히 공격 포인트만 많았던 것도 아니다. 해리 케인과 함께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유럽 축구계에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다. 유럽 언론들로부터 '이번 시즌 최고의 듀오'라는 찬사를 받았고, 연일 EPL 공식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했다.
뛰어난 스탯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기세'도 좋았다. 경기에 나설 때마다 무언가 일을 낼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손흥민은 이 흐름을 등에 업고 1월까지 리그 득점 상위권을 유지하는 등 리그 최고 공격수 중 하나로 자리했다.
이 흐름이 다소 엉킨 건 최근 일이다. 1월 들어 손흥민의 득점포와 팀 상승세에 이상이 생겼다.
손흥민은 1월5일(이하 한국시간) 잉글랜드 풋볼리그컵(카라바오컵) 브렌트포트전 이후 2월7일 EPL 23라운드 웨스트브로미치앨비언(WBA)전까지 한달 넘게 득점포를 가동하지 못했다. 초반 최고의 페이스를 떠올리면 이상하리만치 길었던 부진이다. 마침 케인마저 부상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고, 토트넘은 동력을 잃은 채 리그에서 3연패를 당했다.
다행히 2월 들어서는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언급했던 2월7일 WBA전을 통해 무득점 사슬을 끊었고, 11일 치러진 FA컵 16강 에버턴전에선 골은 넣지 못했지만 빠른 측면 돌파로 2도움을 기록하는 등 장점을 발휘하는 장면이 나왔다.
손흥민은 에버턴전 기록까지 합쳐 이번 시즌 29개의 공격 포인트(17골 12도움)를 기록 중이다. 자신의 클럽 커리어 최다 공격 포인트 30개보다 한 개 모자란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커리어 하이' 시즌을 갈아치울 수 있다. 기왕 새로 작성할 것이면 훌쩍 넘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사실 한 시즌 내내 최상의 모습을 이어가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중요한 건 부진의 시간을 얼마나 최소화하느냐다. 다시 골 맛을 보고 팀도 연패를 끊은 이 시기에 치고 나가 좋았던 때의 폼을 되찾아야 한다.
공을 잡을 때마다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들었던 자신감을 기억해야 하고, 상대의 집중 견제 속에서도 힘을 발휘했던 케인과의 콤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부상도 조심해야 한다. 지난 시즌 꼭 이맘때쯤, 손흥민은 3경기 연속골로 주가를 높이던 때 팔 부상을 당했다. 이후 손흥민은 2주를 쉬었고, 돌아온 뒤엔 9경기 2골로 다소 아쉬운 마무리를 했다. 가장 중요한 시즌 막판에 추진력이 없었다.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손흥민은 이번 시즌 초반 좋은 모습을 보일 때에도 "이 모습을 시즌 내내 유지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인터뷰했던 바 있다. 뜨거운 승부욕과 냉철한 성찰을 함께 지닌 손흥민은 남은 시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b>◇ 황의조의 2월, 팀 내 최고의 공격수가 되어라 </b>
황의조는 손흥민과 반대의 흐름이었다. 초반부터 잘 나가던 손흥민과 달리 개막 후 한참이 지나도록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실 이번 시즌 황의조를 향한 국내외 언론의 기대는 꽤 높았다. 지난 시즌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 데뷔 시즌이었던 지난 시즌은 적응기도 필요했고, 한창 물이 올라 연속골을 넣던 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리그가 조기 종료되는 변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6골 2도움이라는 나쁘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
따라서 이번 시즌엔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황의조를 측면 공격수로 활용하던 파울루 소자 전 감독 대신 장 루이 가세트 감독이 새롭게 부임한 점도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황의조는 지난 시즌보다도 더 자리를 잡지 못했다. 가세트 신임 감독이 황의조를 원톱 공격수로 기용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부진한 팀과 맞물려 제대로 된 슛도 날리지 못하고 끝난 경기도 많았다.
결국 다시 측면 공격수로 밀려났다. 부상이 아님에도 벤치를 지킨 경기도 생겼다. 프랑스 무대 진출 자체가 실패로 기억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긴 부진이었다.
그러나 황의조는 스스로 반등 포인트를 만들었다. 모처럼 다시 원톱으로 출전한 15라운드 생테티엔전에서 기어이 1호골을 만들었다. 이 골을 기점으로 완전히 흐름을 탔다. 21라운드 앙제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는 등 어느덧 지난 시즌 기록 6골 2도움을 다 따라 잡았다. 이제 '커리어 하이'는 떼 놓은 당상이다.
사실 황의조의 목표는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드는 게 아니다. 손흥민의 경우는 새 기록을 세우는 게 의미 있을 만큼 자신의 지난 기록이 훌륭했다. 그래서 이를 다시 한 번 깨고 더 나아가는 게 상징하는 바가 크다. 반면 황의조는 이제 유럽에서의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선수다. 데뷔 시즌보다 더 나은 공격포인트를 만든다면 칭찬할 일이긴 하나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황의조가 이번 시즌을 통해 갖고자 하는 진짜 가치는 '팀 내 입지 높이기'다. 단순히 출전 시간을 놓고 말하는 게 아니다. 팀이 어려울 때, 꼭 골이 필요할 때 황의조는 오히려 교체되어 나오곤 했다. 공격보다 수비를 더 요구받을 때도 있었다. 이전 소속팀과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늘 마무리를 도맡았던 황의조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최근 황의조가 최근 원톱 스트라이커로 꾸준히 선발 출전하고 팀이 필요로 할 때마다 골을 넣는 점은 참 고무적이다.
황의조는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 모두 6골을 기록 중이지만, 그 의미는 조금 다르다. 지난 시즌엔 지미 브리앙(7골)과 니콜라스 데 프리빌(6골) 등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앞서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팀 내 득점 단독 선두다. 지난 시즌 최다 득점자 브리앙은 1골에 그치고 있고, 레미 오딘이 4골로 황의조의 뒤를 따르고 있다. 황의조가 원톱을 꿰차자 포지션이 겹치는 조쉬 마자는 아예 임대를 떠났다. 팀이 골을 필요로 할 때 보르도에서 가장 내세울 수 있는 옵션이 황의조가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직 완벽한 입지는 아니다. 가장 최근 리그 경기만 봐도 그렇다. 브레스투아전에서 골을 넣었음에도 직후 교체됐다. 리그 기준 풀타임 출전도 아직 한 번도 없다.
그래서 황의조도 더 나아가야 한다. 적응기였던 지난 시즌을 지나, 이번 시즌엔 보르도 최고의 공격 옵션으로 확실히 뿌리 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첫 번째로 골을 놓치지 않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최근 황의조는 골과 다름없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적잖다. 함께 뛰는 동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면 쉬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무리 지어 줘야 한다.
두 번째는 팀에 승리를 안기는 골을 만들어야 한다. 보르도는 9승5무10패(승점 32)로 프랑스 리그1에서 10위를 달리고 있다. 10승8무5패(승점 38)를 기록 중인 5위 스타드 렌과 승점 6점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그만큼 팀이 매 경기 중요한 승부처를 지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럴 때 결승골을 넣는다면 그 임팩트와 가치는 더 올라간다.
스탯도 중요하지만, 팀 내 입지와 위상은 황의조가 향후 보르도는 물론 유럽에서 이어 갈 커리어를 위해 꼭 얻어야 할 가치다. 지금이 승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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