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야구 전설' 장훈 별세에 애도 물결…"발자취 오래 기억될 것"(종합)

9일 일본 도쿄서 세상 떠나, 역대 최다 '3085안타' 기록 보유
이승엽·일구회·일본 매체 등 각계각층 추모

재일동포 야구선수 출신 장훈이 9일 별세했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서장원 기자 = 일본 프로야구(NPB)를 대표하는 '전설의 타자' 장훈이 별세하자 한일 야구계에서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야구의 레전드 이승엽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코치부터 일구회까지 한국과 일본 야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재일교포 전설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10일 장훈의 별세 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한 일본 매체 TBS는 "장훈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을 듣고 깊은 애도를 표한다"는 내용의 헌사를 발표했다.

매체는 "장훈은 2010년부터 2021년까지 TBS 스포츠 코너 '선데이 모닝'의 패널로 활약했다. 그는 채찍과 당근을 넘나드는 평론으로 많은 인기를 모았다.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닛칸스포츠는 장훈의 현역 시절부터 은퇴 후 활동까지를 조명했다. 특히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장훈이 5살 때 원폭 피해를 입고 누나를 잃은 가정사도 언급했다.

현역 시절 NPB에서 뛰며 장훈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이승엽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코치도 SNS를 통해 추모의 뜻을 나타냈다.

그는 장훈과 함께 찍은 사진 여러 장을 올리며 "일본에서 뛰던 시절, 강한 마음을 가지라던 선배님의 격려와 후배를 아껴주신 따뜻함을 오래 기억하겠다"라고 적었다.

사단법인 일구회도 추도문을 발표하고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힘쓴 장훈의 생전 활동을 기렸다.

9일 별세한 재일교포 야구선수 장훈의 현역 시절 모습.ⓒ AFP=뉴스1

일구회는 "수많은 기록과 업적을 남기며 일본 프로야구사에 불멸의 발자취를 새겼고, 은퇴 후에도 야구 해설자와 평론가로 활동하며 야구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과 소신으로 야구의 가치와 매력을 널리 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훈 선생께서 평생에 걸쳐 보여주신 야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후배를 향한 깊은 애정, 그리고 한국과 일본 야구계에 남기신 크나큰 발자취는 오래도록 우리 야구인들의 가슴속에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지에 따르면 장훈은 지난 9일 오후 5시쯤 도쿄의 한 병원에서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2년 히로시마시립 비지야마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당시 사고로 인한 오른손 장애로 왼손투수로 전향했다.

1957년 어깨부상을 당해 투수에서 타자로 포지션을 바꾼 장훈은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해 퍼시픽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닛타쿠, 니혼햄 파이터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롯데 오리온스 등을 거치며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통산 7차례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고, 1962년에는 퍼시픽리그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1970년 기록한 타율 0.383은 당시 단일시즌 최고 타율이기도 했다.

1972년 8월 19일 일본프로야구 역대 7번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한 장훈은 8년 뒤인 1980년에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통산 3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그가 현역 시절 기록한 3085안타는 현재까지도 일본 프로야구 통산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81년 10월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는 짧은 지도자 생활을 거쳐 야구 해설위원 및 평론가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한국 프로야구와도 인연이 깊다. 장훈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2005년까지 총재특별보좌를 지냈으며, 출범 초기 재일교포 선수들이 한국 무대에 진출하는 데 힘을 보탰다.

고인은 2007년에는 대한민국 정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9일 별세한 재일교포 야구선수 장훈의 현역 시절 모습.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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