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LPGA 25승, 한국인 최초 명예의 전당…박세리가 남긴 업적
- 권혁준 기자

(인천=뉴스1) 권혁준 기자 = 한국 여자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가 마침내 현역선수 생활에 작별을 고했다.
박세리는 13일 인천 영종도의 스카이72 골프&리조트 오션코스(파72·6364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 경기를 마친 뒤 은퇴식을 진행했다.
박세리는 한국 여자 골프의 '개척자'와도 같은 선수다. 1990년대말 외환 위기로 실의에 빠져있는 국민들에게 연이은 승전보를 전하며 희망을 안겨줬고, 골프가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단순 기록만 살펴보더라도 박세리의 업적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박세리는 중학교 시절 부터 프로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낸 '될성 부른 나무'였다.
그는 대전 갈마중 3학년이던 1992년 아마추어 자격으로 출전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라일 앤 스콧 여자 오픈에서 연장접전 끝에 원재숙을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를 시작으로 1996년 프로에 공식 입문하기 전까지 박세리는 이미 KLPGA투어에서 6승을 챙겼다.
프로로 전향한 이후로도 박세리의 질주는 계속됐다. 박세리는 프로 데뷔 첫해인 1996년 4승을 쓸어담았고, 상금왕과 최저타수상까지 수상하며 투어를 들썩이게 했다. 1997년에도 2승을 추가한 박세리는 LPGA투어 퀄리파잉투어를 수석으로 통과하며 미국 무대에 뛰어들었다.
박세리는 미국 진출 첫 해인 1998년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는 메이저대회인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데 이어 7월 미국 '내셔널 타이틀' US 오픈마저 제패했다.
LPGA투어 첫 우승과 두 번째 우승을 모두 메이저에서 기록한 선수는 박세리가 최초였다. US 여자오픈에서는 맨발로 물에 들어가 트러블샷을 날리는 '명장면'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2승을 더 추가하며 루키시즌에 4승을 기록한 박세리는 한국인 최초로 LPGA투어 신인상을 받았다.
박세리는 1999년에도 4승을 추가했고, 2001년에는 메이저대회 1승을 포함해 5승을 쓸어담았다. 같은해 8승을 독식한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에 밀려 주요 타이틀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박세리는 캐리 웹(호주)과 함께 소렌스탐의 대항마로 자리잡았다.
박세리는 월드컵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던 2002년에도 5승을 거두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2003년에는 최저타수상을 수상했다.
2004년 이후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던 그는 2006년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을 다시 한 번 제패하며 부활을 알렸다. 그리고 2007년에는 LPGA 명예의 전당 입성 조건을 모두 충족하며 한국인 최초로 이름을 올리는 영예까지 누렸다.
2010년 LPGA투어 마지막 우승을 추가한 박세리는 통산 25승(메이저 5승)으로 역대 23위에 올랐다. 누적 상금은 1258만4376달러로 역대 8위다. 지난해 박인비(28·KB금융그룹)에 추월당하면서 한국 선수 중에서는 두 번째로 높은 순위다. 미국 무대에서 치른 6번의 연장전에서는 모두 승리를 거두는 등 누구보다 뛰어난 집중력과 '승부사 기질'을 보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누린 박세리에게 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바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세리는 LPGA 챔피언십 3차례, 브리티시 오픈과 US 오픈을 각각 한 차례씩 제패했지만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ANA 인스퍼레이션)을 우승하지 못해 그랜드슬램 달성을 놓쳤다.
박세리는 선수 생활 마감을 결정한 올해에는 올림픽 감독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여자대표팀 감독으로 박인비, 전인지, 양희영, 김세영을 이끌었다. 박인비가 금메달을 딴 이후에는 자기 일만큼 기뻐하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박세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한국 골프와 함께 했고, 쉽지 않은 업적을 일궈내며 '전설'로 남았다. 박세리는 떠나지만 그가 남긴 화려한 발자취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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