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맞을까 남장하고 페달 밟던 아프간 소녀…감격의 '銀'[AG]

2021년 탈레반 집권 뒤 고국 떠나 이탈리아 정착
“언젠가 카불 거리에서 여성들과 함께 자전거 타고 싶어”

아프가니스탄 국적의 파리바 하시미. ⓒ AFP=뉴스1

(서울=뉴스1) 이동건 기자 = 자전거를 타러 나설 때면 남자로 변장하고 얼굴까지 가렸다. 여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돌을 던지거나 때리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숨어서 페달을 밟던 아프가니스탄의 파리바 하시미가 9년 뒤 아시안게임 시상대에 올랐다.

27일 인사이드더게임스 등에 따르면 파리바는 지난 22일 일본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사이클 여자 개인도로에서 2시간50분05초를 기록, 중국의 궈리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홍콩의 렁윙이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번 은메달은 아프가니스탄이 이번 대회에서 수확한 첫 메달이다. 아울러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24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여성 선수가 따낸 아시안게임 메달이다.

시상대에 오르기까지 파리바가 달려온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파리바가 처음 자전거 경기에 나선 것은 2017년이다. 언니 율두즈 하시미와 함께 지역에서 열린 자전거 대회 광고를 본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두 사람은 자전거를 제대로 타본 경험조차 없었다. 이웃에게 자전거를 빌린 뒤 몇 시간 동안 연습하고 대회에 나섰는데 놀랍게도 파리바가 1위, 율두즈가 2위를 차지했다.

재능을 확인했지만, 마음껏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차가웠다. 두 자매는 가명을 사용하고 남자처럼 옷을 입는 등 신분을 감춘 채 훈련하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파리바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훈련하러 갈 때면 항상 남자처럼 옷을 입었다"며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면 돌을 던지거나 때리려고 할 때도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단순한 위협에 그치지 않았다. 두 사람이 훈련하는 동안 돌과 병이 날아들기도 했다. 언니 율두즈는 한 차례 인력거에 부딪혀 손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래도 두 자매는 페달을 멈추지 않았다.

2020년에는 나란히 아프가니스탄 여자 사이클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그러나 이듬해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장악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파리바 하시미. ⓒ 로이터=뉴스1

결국 파리바는 2021년 고국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했다. 여자 도로사이클 전 세계 챔피언 알레산드라 카펠로토의 도움으로 현지에 정착한 뒤에도 훈련을 이어갔다.

파리바는 "탈레반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꿈을 좇기 위해 탈출했다"며 "전 세계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우리도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낯선 땅에서도 꿈을 향한 질주는 계속됐다.

파리바와 율두즈는 2024 파리 올림픽에 나란히 출전했다. 2025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대회를 개최할 수 없어 프랑스에서 열린 자국 선수권에서 파리바가 정상에 올랐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전담 정비사조차 없이 일본을 찾은 파리바는 자신의 자전거를 직접 손보고 세척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이를 본 일본 대표팀 관계자들이 자전거 정비를 도우며 손을 내밀었다.

파리바는 "정비사도 없이 왔다. 내가 직접 자전거를 고치고 씻었다"며 도움을 준 일본 선수단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파리바는 결국 아시안게임 은메달이라는 값진 결실을 얻었다.

하지만 은메달을 손에 쥔 파리바의 시선은 다시 고국의 여성들에게 향했다.

그는 "언젠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카불의 거리에서 여성들과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싶다"며 "탈레반이 이 모습을 보고 있기를 바란다. 나는 여성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movegun@news1.kr